최근 동시에 터져나온 두가지 추문(醜聞)으로 재계가 뒤숭숭하다. 하나는 역할과 규모에서 명실공히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이 연루된 이른바 ‘X파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최장수 기업이자 ‘Mr. 쓴소리’로 불리는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이끄는 두산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이다.
두 사건의 성격이나 사회경제적 파장이 전혀 다르다고 해도, 세계에 한국 경제의 얼굴로 알려져온 두 기업이 지금 처한 곤경과 위기를 보고 듣는 국민의 마음은 실로 착잡하다.
삼성이나 두산으로선 일방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 억울하고, 할 말도 많을 것이다. 8년전 이뤄진 국가권력의 불법적인 도청에 의한 부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세계적 초일류 반열에 오른 기업이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기아차 인수로비와 관련해 뇌물죄의 공소시효까지 거론되니 이보다 더한 망신이 어디 있겠는가.
사욕에 눈이 어두워 가문의 명예와 형제간의 우애를 더럽힌 한 사람의 ‘경영권 탈취 미수사건’으로 ‘사우디 왕가식 경영승계’의 전통이 훼손됐으니 선대를 볼 낯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해당 기업이나 재계가 아무리 낮은 자세를 취하더라도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을 치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비자금 조성이나 뇌물수수ㆍ배임 혐의 등에 대한 사법당국의 수사와 별개로, 재벌의 황제경영 잔재와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재벌개혁 요구가 힘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재계는 얼마전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일가가 순환출자를 이용, 4% 안팎의 지분으로 수십개 계열사를 가진 그룹을 지배한다”는 자료를 내놓았을 때 ‘저의’ 운운하며 날을 세웠다.
또 출자총액제한 등 반기업적 정책을 비판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내놓으려다 이번 일로 취소했다. 과거의 일로, 혹은 특정기업의 일로 재계가 움츠려서도 안되겠지만 기업을 오너의 사유물로 여기는 구태가 과연 사라졌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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