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고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불안하다고 푸념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때로는 우리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의 한ㆍ일 월드컵을 우리나라에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자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한국에 유치하는 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80년대초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 올림픽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해 한반도 분단을 더욱 고착화할 것이라는 거창한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10여년 동안 기자생활을 한 90년대 후반에는 월드컵이 유럽과 남미의 각축장이 될 터인데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우리나라가 거금을 들여 잔칫상을 차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이었습니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신청이 28일 마감됩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21일 강원도 평창을 유치 후보도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장 먼저 신청서를 발송했습니다.
평창 외에도 많은 도시들이 유치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평창이 현재로선 가장 앞서가고 있는 듯합니다. 스웨덴의 외스테르순과 프랑스의 안시는 중앙정부와 알력을 빚고 있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주민들이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심은 금물입니다. 얼마 전 열린 IOC 싱가포르총회에서 줄곧 1위를 달렸던 프랑스 파리가 막상 투표에서는 영국 런던에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한국 역시 2003년 2010년 동계올림픽 선정을 위한 1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큰 표차로 승리하고도 2차 투표에서 53 대 56으로 평창이 패했습니다.
게다가 30여년간 스포츠 외교를 독점하다시피 해온 김운용 전 IOC위원이 창피한 일로 사퇴하면서 한국인 IOC위원이 박용성 두산회장, 이건희 삼성회장 등 2명으로 줄어 영향력이 이래저래 약화된 상태입니다.
얼마전 IOC 사정을 잘 아는 분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자크 로게 위원장 취임 이후 IOC도 많이 변했다면서 변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무기명 전자투표방식을 꼽았습니다.
종전에는 총회장의 투표함 주위에서 IOC 위원들이 설득과 협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리에 앉아 손바닥만한 단말기를 누르면 곧바로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위원들이 합종연횡할 여지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이 바람에 싱가포르 총회에서 위원장 등 유력 IOC위원의 표심 장악력이 약해진 반면 국가원수급 인사가 나선 스포츠 정상외교는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실제 싱가포르 총회에선 2012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신청한 5개국 중 대통령과 총리가 나선 프랑스와 영국이 막판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결국엔 G8 정상회담 주최자로 시간에 쫓기면서도 싱가포르까지 내외가 날아와 쌍끌이 득표활동을 전개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면식도 없는 IOC위원에게 인사공세를 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눌렀습니다.
IOC는 2006년 6월 공식 후보도시를 선정하며,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개최지를 결정합니다. 평창이 유치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3대 스포츠 행사인 하계올림픽, 월드컵, 동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는 나라가 됩니다. 지금까지 3대 스포츠 행사를 개최한 국가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5개국에 불과합니다.
2007년 7월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에 해당합니다. 총리가 나섰던 2010년과 달리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듯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대미만은 멋지게 장식하기를 기대해봅니다.
김경철 체육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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