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5일 홍석현 주미대사의 거취 문제를 결정하는 잣대로 ‘사회적 공론’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안기부(현 국정원)의 불법도청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히면서 도청으로 얻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당국자들과 협의하고 사회적 공론을 들어가면서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공론을 따르겠다는 것은 상식과 국민 여론을 존중해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홍 대사가 대선자금을 직접 전달한 게 사실이라면 대사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여당은 물론 정치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사회적 공론’ 언급은 사실상 ‘홍 대사 교체 불가피’로 가닥을 잡고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부정의 유형을 드러내 법적ㆍ도덕적 책임을 지게 해야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국민의 생각이 있다”고 말한 것은 대선자금 전달 의혹에 대해 문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사견임을 전제로 “도덕성에 흠집이 난 마당에 대사직에 남겠다고 버티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홍 대사 거취 문제를 자진 사퇴 방식을 통해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는 청와대 기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표면적으로는 홍 대사의 거취 문제에 대해 직접적 발언을 삼가고 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 청와대 회의에서는 홍 대사 거취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중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우선 테이프 내용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홍 대사 거취를 거론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정원의 진상 조사가 마무리된 뒤에야 홍 대사 교체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도 아니다. 국정원 조사가 끝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내심은 홍 대사가 조기에 자진 사퇴해 주는 것이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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