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가 25일 검찰에 고발한 안기부 X파일 관련 당사자들의 비리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뇌물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등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법 조항(표 참조)에 한정돼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과 불법도청 혐의는 이미 처벌 가능한 기간이 지나 고발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이 일단 고발 내용을 중심으로 수사를 할 경우 우선적인 수사 대상은 삼성이 건넨 자금의 규모와 대가성 여부가 될 것이다. 대가성 있는 금품을 5,000만원 이상 받은 경우 공소시효가 10년인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본격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 보도를 토대로 한 고발장은 1997년 당시 여야 대권후보와 정치인, 검찰 간부 등이 각종 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도청 자료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
결국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법원은 뇌물죄 적용에 있어 대가성 기준을 갈수록 엄격히 요구하는 추세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은 “ 뇌물죄 입증이 되겠나. 기소했다가는 다 무죄가 날 것이 뻔해 서로 안 맡으려고 한다”고 검찰 내 분위기를 전했다.
수사의 또 다른 줄기는 삼성의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이다. 당시 기아차 사태는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도청 자료에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당시 회장 비서실장)이 홍석현 주미 대사(당시 중앙일보 사장)와 경제부총리 지원 방안을 논의하면서 “3~5개(3,000만~5,000만원) 정도를 주라”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홍 전 사장이 “여당 대선 후보가 ‘(기아차 인수) 복안을 공론화하면 가능한 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고 말하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당사자들이 부인할 경우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고발장을 받아 든 검찰은 한마디로 ‘이보다 더 곤혹스러울 수는 없다’는 표정이다. 의혹 행위 대부분이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의 실익이 없고, 도청자료는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한 검찰 간부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의혹해소 차원의 수사도 하면 안 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천정배 법무장관이 “거대권력의 횡포 차단이 검찰의 책무”임을 강조한 것으로 미뤄 결국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수사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는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라 해도 유·무죄를 가릴 유일한 증거는 될 수 없지만 정황증거로는 충분히 쓰일 수 있다고 본다”며 “국민의 알권리라는 공익적 가치를 위해 검찰이 적극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의혹은 공직자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중대 범죄행위”라며 “여러 해 전의 일이지만 사회정의와 정치권-재벌-언론의 유착 근절을 위해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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