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데는 더 이상 ‘국민정서법’을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
삼성은 21일 MBC 등이 도청 테이프를 보도한 이후 줄곧 언론에 대해 “위법성 여부를 면밀히 검토,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실정법’을 근거로 한 원칙론을 강조해 왔다.
특히 그룹 법무실 관계자들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언론의 잘못된 보도 관행에 대한 판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으면 개인 자격으로라도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해 왔다.
안기부 문건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정치자금 규모를 직접 ‘결정’했고,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등 ‘X파일’의 폭발성이 너무 커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강경 기류 형성에 일조했다.
삼성은 또 ‘X파일’ 실체에 대해 확인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과문’을 내면 모든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삼성공화국’ 논란에 이은 ‘X파일’ 사건으로 국민 분노와 반감이 확산되자 삼성은 이날 사과문을 내기로 급선회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항복한 건 아니다. 삼성은 발표문에서 “알려진 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왜곡된 면도 있다”며 보도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소송과 사과문은 별개”라며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은 변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정서법과 ‘법대로’는 다르다는 얘기다.
삼성은 임직원 명의로 사과문을 낸 데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정치자금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그룹의 안위를 위해 제공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종수 기자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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