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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행정구조 개편 주민투표 D-2/ 기초·광역 공무원간 갈등속 주민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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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행정구조 개편 주민투표 D-2/ 기초·광역 공무원간 갈등속 주민 "무슨 일이…"

입력
2005.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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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계층구조 개편안에 대한 사상 최초의 주민투표를 앞둔 제주는 지금 ‘주민 갈등’이라는 대형 폭풍과 맞서고 있다. 27일 실시되는 주민투표는 정부가 천명한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반 마련을 위해 광역자치단체인 제주도를 제외한 4개 기초자치단체의 자치권을 박탈해 제주시ㆍ북제주군과 서귀포시ㆍ남제주군을 각각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개 시로 통합하고, 도지사가 시장을 임명하는 행정 혁신의 도입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을 묻는 것이다.

40만명의 제주 유권자들은 27일 투표장에서 ‘단일광역자치안(혁신적 대안)’과 이를 유보하고 광역ㆍ기초단체의 2개 행정계층을 유지하는 ‘현행유지안(점진적 대안)’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이번 주민투표는 주민투표법 제정 이후 국가정책 결정을 지역 주민이 직접 선택하는 전국 최초의 경우로 그 결과에 커다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주민투표는 제주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혁신안으로 자리 보전이 위태롭게 된 기초단체 공무원 및 기초의회 의원들, 반대로 강력한 파워를 갖게 되는 광역단체 공무원들 간의 갈등이 심화하는 것은 물론 주민들도 두 안을 놓고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민투표에 대한 홍보 부족에다 많은 제주 주민들의 무관심까지 겹쳐 투표율은 50%에도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초단체 공무원 “혁신안 안될 말”

55만 제주 인구 중 30만이 모여 살고 있는 제주시에서도 가장 유동인구가 많아 ‘제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제주시청 앞 사거리. 그러나 22일 오후, 이곳에서 닷새 앞으로 다가온 주민투표의 분위기는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시청 외벽에도 플래카드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주민투표로 혁신안이 선택되면 지위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기초단체 공무원들은 투표 참여 운동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제주시청과 각 군청 직원들은 대외적으로는 투표율 진작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내심은 투표율이 유효 투표수 아래로 나오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제주시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에서 혁신안이 선택되더라도 기초단체 공무원들의 신분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며 “기존 공무원들의 자리를 보전하더라도 신규채용은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 결국 제주 지역의 취업난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기초단체들이 혁신안을 반대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표 홍보활동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재신 제주시 공보과장은 “도지사가 입맛대로 임명하는 시장과 군수들이 오면 민선단체장들보다 아무래도 지역에 대한 애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에 가서 예산을 따오는 등 ‘영업’에 열성적이기가 힘들어 결국 재정자립도도 낮아지고 지역경제가 도태될 수 있다”며 “점진안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혁신안이 옳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선안이 나올 때까지 개혁을 보류하자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혁신안 저지를 위해 시민단체를 돕고 주민들을 몰래 접하면서 개혁이 가져올 폐해를 부풀려 설명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도 공무원 “투표율 75% 위해 사활 건다”

반면에 주민투표를 총괄하는 제주도청 자치행정과 사무실 전면에는 ‘투표율 75% 달성 꿈은 이뤄진다’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매달려 있었다.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이 가득 적힌 화이트보드가 야전사령부를 방불케 할 정도다.

도청 공무원들은 기초단체 공무원, 심지어 일선 통장들이 퍼뜨리는 혁신안에 대한 소문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주민들에게 혁신안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는 소문을 퍼트리는 통에 투표율이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고 말했다.

고경실 도 자치행정과장은 “혁신안이 선택되고 특별자치도가 만들어지면 제주도로 외교, 국방을 제외한 모든 권한이 오게 돼 있다” 며 “점진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혁신안으로 공직사회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도의 영역이 커지는데 인력 감축이 가당키나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점진안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의 혁신안 반대 궐기대회를 시ㆍ군 공무원들이 뒤에서 봐주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고 덧붙였다.

투표 후 도민 갈등 예고

북제주군 구좌읍 동복리의 한 시민단체는 21일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점진안을 지지하는 단체들을 겨냥해 “막가파식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혁신안이 채택되면 도지사는 허수아비 시장을 임명한다는 식의 발언을 일삼는 제주주민자치연대는 도민 앞에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점진안을 痴置求?자치연대는 보도자료를 내고 “혁신안은 정부의 전국적인 행정구역 재개편 논리에 힘을 실어주어 결국 제주도의 위상을 한국의 60분의1 규모로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은 이렇듯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제주도민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하는 양상이 두드러지자 22일 제주도를 방문해 진화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명목상으로는 공무원 특강 스케줄로 제주를 방문한 오 장관은 제주도청을 찾아 “혁신안이 선택되더라도 제주도에 투자되는 예산을 줄이거나 조직 축소로 공무원을 감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장관은 “공무원의 투표운동 참여 금지 등 제주 주민투표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점차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민 외면한 ‘행정 혁명’

택시기사 고창인(60)씨는 “아마도 제주 사람들 절반 이상은 27일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고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뽑는 투표와 달리 두개의 정책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주민투표가 생소하고, 두 가지 안의 차이가 뭔지 알기 힘들어서 주민들의 관심이 높지 않다” 고 말했다.

고씨의 말처럼 제주 주민투표는 막상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행정구조 개편이 가져올 영향을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데다, 주민투표법이 공무원의 투표운동 참여를 제한하고 있어 적극적인 홍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여론조사들은 투표율이 절반 가량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민투표는 투표율이 유권자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하면 무효가 된다. 비록 투표율이 이를 넘어서더라도 주민들의 호응이 적다면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제주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일인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지만 휴가철이고 많은 주민들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어 이들이 얼마나 투표장으로 발길을 옮길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 특별자치道

7ㆍ27 제주 주민투표는 정부가 제주를 ‘특별자치도’로 만들기 위한 첫 과정이다. 제주도를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강소(强小) 도시로 개발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도와 시ㆍ군ㆍ읍ㆍ면ㆍ동이라는 전국적으로 획일화한 행정계층구조가 아닌 단순하고 효율적인 행정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구상안의 골자는 제주에 외교, 국방을 제외한 모든 자치권을 파격적으로 부여하는 것. 이를 통해 제주를 개방경제로 대변되는 자치모범도시로 구현해 국제적 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밝힌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구상안에 따르면 앞으로 제주의 핵심산업은 관광, 교육, 의료 분야다.

이를 위해 제주에 유엔 산하기구를 유치하고 관광공사를 설립하며 해양박물관 등 대형관광지 조성을 추진한다. 또 세계 유수대학 유치에 필요한 범정부적 지원과 함께 외국어 교육기관 설립을 위해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한다.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외국 유수병원 유치 등 선진의료제도 도입에 필요한 자율권을 제주에 부여하게 된다. 특별자치도의 자생적 발전역량이 성숙할 때까지 재정 지원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특별자치도가 되면 제주에서 걷히는 국세를 중앙정부가 가져가지 않고 제주도민들을 위해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등 획기적인 제주 살리기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다”며 “특별자치도 사업의 효율적 추진과 제주의 행정구조 개편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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