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남북작가대회/ 6·15실천 남북작가대회 24일 폐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남북작가대회/ 6·15실천 남북작가대회 24일 폐막

입력
2005.07.24 00:00
0 0

20~25일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를 옮겨가며 열리고있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이하 남북작가대회)’는 광복 후 남북 문인들이 60년 만에 처음 만난 자리다.

행사는 20일 오후 평양 본대회, 21일 평양 관광, 22일 ‘통일문학의 새벽’ 예행연습, 23일 백두산 천지에서의 ‘통일문학의 새벽’ 행사와 저녁 묘향산에서‘민족문학의 밤’ 행사, 24일 평양 폐막연회 순으로 진행됐다.

▦ 20일

당초 오후 3시로 예정됐던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의 본 행사는 해외동포 작가의 대표자격 부여 문제를 놓고 남북 실무 협의자간 입장차로 4시간여 지연됐다. 초대작가 자격으로 온 해외동포 작가 14명에 대해 북측이 갑자기 ‘해외작가 대표’ 자격을 부여하자고 제의했기 때문. 논란 끝에 북측은 결국 “이들이 전체 해외동포 작가들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우리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남측에선 염무웅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장, 황석영 민족예술인총연합회 회장, 신세훈 문인협회 회장, 김종해 한국시인협회 회장, 현기영 문예진흥원장, 송기숙 광주문화중심도시조성 추진위원장, 황지우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준비위 집행위원장 등이 참가했다. 북측에선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김병훈 위원장, 4.15 문학창작단 김정 단장 등이 참가했고, 해외에서는 이언호 미주문학회장, 김정수 재일조선문학예술가동맹 중앙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또 북한 로두철 부총리가 나와 개막 축사를 했다.

북한의 엘리트 문인들로 구성된 4.15 창작단 소속 동기춘(66) 시인은 “오늘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다”고 눈물을 끌썽인 뒤 특히 좋아하는 남쪽 시인이라는 문병란의 시 ‘등소산 머슴새’를 즉석 낭송했다. 그는 남쪽 북한문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문학성을 평가받는 시인이다.

▦ 21일

21일 남측 대표단은 김일성 생가와 주체사상탑, 개선문,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둘러보았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쑥섬 통일전선탑 방명록에 ‘달 밝은 밤이면 삼천리가 한 마을’이라고 적었다. 시인 고은씨는 북측 수행원에게 ‘평양광명중 1년 김의성군’이라고 쓰인 물감 한통을 전달했다. 지난 해 평양을 방문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김군의 그림을 선물로 받은데 대한 답례로 부탁한 것이다.

오후에는 고려호텔 3층 소극장에서 백두산 ‘통일문학의 새벽’ 예행연습이 열렸다. 소설가 은희경씨가 또렷한 목소리로 사회자용 초고를 읽어나가자 북 작가들은 “예술성이 뛰어나다” “인민배우나 공훈배우보다 잘 한다”고 연신 찬탄을 보냈다.

소설가 송기숙씨는 “황석영, 문익환, 임수경씨가 철조망을 뚫고 분단의 벽을 넓혀왔다. 세 분은 다 감옥에 갔는데, 우리는 어제비행기를 타고 와서 이렇게 합의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인 고은씨는 북 시인 오영재씨의 손을 잡으며 “그 때 6개월 감옥 갔다”고 말했다. ‘그 때’란 89년 고씨가 민족문학작가회원과 함께 남북작가회의에 참가하려 판문점으로 향하다 파주에서 연행된 사건. 당시 판문점에서 남측 작가들을 기다리던 전남 강진 출신의 오씨는 이후 서울을 방문해 가족을 상봉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도 북 작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려’를 강조했다. 북 시인 홍석중씨는 “이번 만남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행사가 잘 진행되는지 물어보신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 가시면 장군님의 관심을 잘 알려주시라”고 당부까지 했다.

▦ 22일

남측 대표단은 백두산 삼지연 공항에 도착해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 시절 은거지로 삼았다는 귀틀집인 이른바 ‘백두산 밀영’ 등을 둘러보았다. 북측 안내원들은 남측 작가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사진 촬영에도 기꺼이 응했다. 이들은 백두산관광의 추진 전망을 묻는 등 깊은 관심과 기대를 표했다.

▦ 23일

새벽 5시 ‘통일문학의 새벽’ 행사를 위해 백두산 장군봉 아래에 남과 북, 해외문인 등 150여명이 모였다.

은희경씨와 북 시인 리호근씨의 공동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과 장해명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이 평양 남북작가대회 본대회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고은씨는 전날 밤 삼지연 베개봉호텔에서 썼다는 시 ‘다시 백두산에서’를 특유의 열정으로 낭독했다.

이어 재미동포문인 이언호씨와 북 시인 박세옥씨, 남쪽 소설가 송기숙씨, 재일동포문인 김학렬씨, 북 여성시인 박경심씨, 남쪽 시인 안도현 씨, 북 소설가 남대현씨, 남쪽 소설가 현기영씨가 나와 각자의 시를 읽거나 소감을 밝혔다. 또 소설 ‘빨치산의 딸’ 작가 정지아씨가 고 김남주 시인의 시 ‘조국은 하나다’를 낭독한 뒤 북 시인 오영재씨가 “열다섯 살에 다도해 기슭을 떠나/ 평양에서 일흔이 된 이 몸… … 온 민족이 이렇게 손 잡고 갑시다”라는 내용의 자작시 ‘잡은 손 더 굳게 잡읍시다’를 낭송했다.

남쪽 시인 이기형(89)씨는 월북시인 오영재씨에게 “어머니를 북에 두고 내려온 나와, 어머니를 남에 두고 올라온 당신은 같은 처지”라고 말하며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김병훈 조선작가동맹 위원장의 연설로 행사를 마감하면서 참가자들은 “백두산 만세” “민족문학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외쳤다.

경북 안동 태생으로 경복중 3년 때 아버지가 있던 일본에 밀항했다가 고교 3년 때인 63년 북송선을 탔던 소설가 남대현(58)씨는 “남과 북, 해외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감개무량하다”며 “오늘 행사는 가장 훌륭한 때와 장소와 사람들의 만남이니 이제 우리의 마음만 모이면 된다”고 감격해 했다. 남씨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청춘송가’에 대해 “문학은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면서도 “인민대중의 투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문학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냈다.

평양.백두산=공동취재단

■ 의의와 전망

‘6.15 민족작가대회’의 성사와 성취는 ‘통일문학’을 향한 남북작가들의 열정과 가능성을 확인하고 과시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번 첫 남북 문학인 교류 행사는 1945년 ‘전국문학인대회’ 좌절 이후 질곡의 세월을 거쳐 어렵사리 내디딘 첫 발이다.

남북작가 200여명은 한 자리에 모여 문학과 통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기댈 어깨를 주었다. 합의 3개항(6.15민족작가협회 구성, 기관지 발간, 6.15통일문학상 제정)은 이런 성과를 결실로 키워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양측 작가들은 공식, 비공식 행사를 통해 해방 60년, 분단 52년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허물어나갔다. 20일 본대회에서 백낙청 남측 상임대표는 축사에서 “분단에 길들여온 작가들이 상상력을 복원하고 치유해 창조적 성숙의 차원에서 민족적 정서를 쇄신하고 통합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통일문학’의 앞길이 순탄할 리 없다. 김형수 남측 집행위원장은 “이번에 채택된 공동선언문은 남북 문학인들의 목표일 뿐”이라며 “언제 어떤 형태로 합의가 실행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6.15 민족작가협회’의 정관과 조직구성, 문학상의 운영 및 재원마련 방안 등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북측과의 지난한 줄다리기를 염두에 둔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서로의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일이다. 하나의 모국어로 ‘문학’과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문학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양측의 기준과 기대가 다르고, 통일의 성격과 지향을 두고도 현격한 간극이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고은 시인은 89년 무산된 남북작가대회를 언급하며 “역사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고 문학은 반드시 시대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백두산=공동취재단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