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주미 대사는 표면적으로 평상을 유지하고 있다. 대사관에 정상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으며, 외부 인사들과의 약속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사관의 분위기는 예전과 다르다. 4층의 대사 집무실 등 대사관 내부엔 긴장이 흐르고 있다. 홍 대사는 언론접촉을 피한 채 안기부 도청 테이프 문제에 대해 굳게 입을 닫고 있다.
홍 대사는 25일 워싱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열리는 ‘한미우호친선대회’의 한미 우호 동맹 증진 주제 포럼 후 만찬사를 할 예정이다. 이어 워싱턴을 방문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의 관저 만찬 약속이 잡혀 있다.
대사관 관계자는 “테이프 공개 이후 일정상에 아무 변화가 없으며 앞으로의 일정도 정상적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대사에 대한 국내의 사퇴 압력이 높아지면서 홍 대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홍 대사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21일 “큰 흐름에 맡기겠다”고 말한 뒤 22일엔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조만간 밝히겠다는 뜻을 간접 전달했다. 홍 대사는 “가까운 시일내 적절한 방법으로 설명할 기회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오수동 주미 대사관 공보 공사가 전했다. 그러나 이 입장 설명이 사퇴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오 공사는 “현재로서는 홍 대사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사관 내부에서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부임 5개월 밖에 안된 대사를 교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25일(한국시간) 홍 대사 거취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소식 등이 전해지자 조기 교체론이 점점 부상하고 있다.
한 직원은 “홍 대사의 평가는 대사 부임 후 공과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도 “홍 대사가 국내의 압박에 오래 버티기는 힘든 분위기 아니냐”고 말했다.
6자 회담 준비에 초비상이 걸린 직원들은 이번 사건으로 홍 대사의 역할에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대사가 국내 정치 문제로 구설수에 오름으로써 결과적으로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 봤다.
한 직원은 “상황이 결국 홍 대사 스스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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