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이용해 불공정 주식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영국계 자산운용사 헤르메스가 결국 검찰에 고발됐다. 도이치은행 서울지점과 BNP파리바은행 서울지점도 파생상품 관련 위법ㆍ부당행위로 기관경고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검찰 고발은 외국인에 대한 강제구인이 불가능해 실효성이 없고 기관경고 역시 당초의 영업정지 처분을 뒤집은 것이어서 ‘면피용’ 조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2일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유 중인 삼성물산 주식의 주가를 끌어올린 뒤 즉각 매도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로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와 이 펀드의 외국인 펀드매니저 C씨, 국내 D증권사 해외현지법인 주재원 K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금융감독 당국이 외국계 펀드와 외국인 펀드매니저의 불법 행위를 문제 삼아 검찰에 고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증선위에 따르면 C씨는 2003년 11월∼2004년 3월 삼성물산 주식 777만2,000주(지분율 5.0%)를 사들인 뒤 한국인 K씨를 통해 2004년 11월 모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련, 삼성물산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 및 헤르메스의 지원 가능성 등이 다음달 1일 보도되도록 유도했다. 이후 일반 투자자들의 참여로 주가가 상승하자 헤르메스는 12월3일 보유주식 전량을 매각, 292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C씨도 개인적으로 보유한 삼성물산 우선주 8,300주를 전량 처분해 5,400만원의 차익을 거뒀다.
이처럼 불법 행위가 명백해 보이지만, 실제 형사처벌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 영국 런던의 헤르메스 본사와 외국인 C씨가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검찰에서 판단할 문제이긴 하나, 외국인은 강제 구인할 수단이 없어 기소중지로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함께 고발된 K씨는 “헤르메스의 주식 매각 의도를 전혀 몰랐고 개인적 이득을 본 것도 없다”며 “헤르메스 측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자 한국인인 나를 ‘모양새 갖추기’ 용으로 추가 고발한 것”이라고 반발해 검찰 수사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헤르메스 측도 이날 해명자료를 통해 “언론 인터뷰는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M&A설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삼성물산 주식 매각 과정에서 어떤 불공정거래 시도도 없었던 만큼,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실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주장했다.
한편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날 공기업 고객에게 파생상품 거래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도이치뱅크 서울지점과 BNP파리바은행 서울지점에 대해 기관경고 조치하고, 두 은행 지점장에겐 각각 업무집행정지 1개월과 주의적 경고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 조치 역시 두 지점에 대해 각각 파생상품 영업정지 3개월과 1개월 처분을 내린 5월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라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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