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뜸하지만 한때 신문이며 잡지며 방송에 무슨 유행처럼 ‘국토기행’ 연재물이 넘쳐 난 적이 있었다. 유명 작가가 우리 땅 여기 저기 돌아보며 글 솜씨를 뽐내는 것들, 궁벽한 향촌의 변화상을 살핀 이야기들이 주종이었다.
명사(名士)들이 나고 자란 시골의 골목골목을 되밟으며 추억을 더듬을 때는 문득 땅의 의미가 새로웠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런 글에는 길어야 50년 안팎의 세월이 녹아있을 뿐이다.
우리 땅의 살갗을 슬쩍 더듬고만 정도라고나 할까. 고장의 내력이며, 시간이 물 들인 지역색에 고장 인심, 나아가 그 지역 정신까지 보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 왕성하게 한문학 작품 번역과 집필 성과를 내고 있는 고려대 심경호(50) 교수의 ‘한시 기행’은 이런 모자람을 너끈히 메꿔주는 책이다. 아니 그저 모자란 자리만 메우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땅의 험준하거나 차분한 지리, 땅색 물색 바람색까지 어우러진 풍광, 고려에서 조선을 이어 봉건의 수탈에 신음하던 민중의 고통에서 권력 쟁투의 흔적까지 팔도 곳곳의 모습을 한시(漢詩)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린 보기 드문 책이다.
책에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역사와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요즘 말로 하면 사회과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정신이 흐른다. 게다가 그것을 들여다보는 도구가 한시이니, 문예미까지 제법 멋스럽다.
‘조선 팔도와 한시’ ‘옛 도읍의 역사미’로 나눈 첫 두 장은 길 따라 고을마다 특색을 한시로 설명했다. 팔도 풍경의 시작은 함경도다. 조선 중기 문신 정두경이 함경북도 초입 바닷가 마을 성진(城津)을 읊은 시는 필력이 천둥 치듯 우람하다.
‘望海樓前海色平 斬鯨臺下跋長鯨 狂濤欲拔三山去 怒蹴常愁北斗傾’(망해루 앞은 바다색이 평평한데/ 참경대 아래로는 큰 고래가 굼실굼실/ 미친 파도는 삼신산을 뽑을 듯하고/ 분노한 발길질은 북두성을 기울일 듯). 시인의 기상도 크지만 함경도의 성난 바다와 험준한 산세가 없었다면 이런 시가 나올리 만무하다.
수락산을 버리고 관동으로 떠나온 나이 오십의 김시습이 ‘鳥外天將盡 愁邊恨不休 …雁下沙汀遠 舟回古岸幽 何時抛世網 乘興此重遊’(새 나는 바깥에 하늘은 다하고/ 수심 끝에 한은 그치지 않아라/ …기러기는 먼 모래톱에 내려앉고/ 조각배는 옛 기슭을 돌아나간다/ 어느 때 세상 그물 버리고서/ 흥에 겨워 여기에 다시 노닐랴)라며 간결하게 탈속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관동팔경 덕분이다.
평안도에는 대륙을 압도할 기상이, 강원도에는 생명과 낭만의 산수가, 전라도에는 황톳길과 부드러운 산이, 경상도에는 예순 고을을 가르는 강물이 있다.
서울, 평양, 송도, 경주 등 옛 도읍의 역사미와 내력을 살핀 한시들, 탐라와 한강수로, 천하명산이라는 금강산, 청학이 사는 지리산,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등 우리의 자연을 노래하는 한시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철산(鐵山)이라고도 하는 평안도 철주가 ‘장화홍련전’의 무대라고 문학작품의 배경을 설명하거나, 춘천 명물 막국수의 재료는 메밀이라며 조선 후기 문신 신위가 지은 ‘교맥(교麥)’이라는 시를 소개하는 식이다.
한시를 통해 보건대 ‘강원도의 산과 물은 속된 유흥의 수단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려무신집권기 김극기가 ‘溪山慘色多’(산과 시내는 참담한 빛)이라고 읊었듯이 ‘넓은 들과 낮은 산등성이의 곡창지대 전라도는 그만큼 수탈의 고통도 컸다’. 한시를 곁들여 저자가 마련한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한 장면과 맞닥뜨리거나,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만나거나, 우리 조상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책이 중국과 어깨를 맞댄 함경도와 평안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고조선과 고구려의 기상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난 것도 그저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책에 수록한 여러 장의 고지도가 멋스럽기는 해도 그것만으로 한시에 등장하는 실제 지역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점이 못내 아쉽다. 글만 따라 읽어서는(특히 북한 지역은), 적어도 독자 처지에서는 책의 맛이 반감된다. 혹시라도 개정판을 낼 때가 되면 한시와 해설에 등장하는 지역을 환히 알 수 있도록 지금 지도를 그려 표시해주는 게 어떨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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