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레이건 전 대통령 묘지가 있는 성당이 결혼식장으로 인기입니다. 주말마다 실시되는 음악회, 현장학습을 거부감 없이 누구나 즐길 정도로 장묘 문화가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이 32개 나라의 장묘시설을 직접 발로 뛰며 둘러보고 세계의 다양한 장묘문화를 소개하는 ‘세계묘지문화기행’이란 이색 서적을 펴냈다. 주인공은 서울시 월드컵공원관리사업소 문화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박태호(53)씨. 그는 1991년부터 10여년 간 서울시 사회과에서 화장업무를 담당하면서 장묘문화와 인연을 맺었다. 4ㆍ19 묘지 성역화 사업,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 등 서울시의 굵직한 장묘 정책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처음 실무를 맡았을 때만 해도 앞이 캄캄했다. “시신 사진이나 들여다 보는 낙후된 업무라 모두들 가기 꺼려했죠. 맡아보니 변변히 자료조차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죠.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면 다른 곳으로 보내 줄 것이라 생각해 제도개선 차원에서 기획안을 제출했습니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의 안이 그대로 시 정책에 반영됐다. “말단 공무원이 누릴 수 없는 묘한 마력이 느껴지더군요. 그 후부터 업무에 흥미도 생기고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재미가 붙은 박씨는 어디서 ‘특이한 모양의 봉분이 있다더라’는 말만 들으면 귀가 솔깃해져 기어이 찾아 나설 정도로 이 일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축적된 기술이나 자료가 전무해 한계에 부닥쳤다. 그래서 선진 장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외국을 찾기 시작했다. 해마다 자비를 들여가며 32개 나라의 장묘시설을 직접 둘러보면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공원묘지는 한 편의 예술작품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는 2000년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 7학기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최근 대학원 과정까지 모두 마쳤다. 그는 “축적된 경험이 있다 보니 공부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장묘시설에 대해 맹목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설득하고 계도해 가면 언젠가 우리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묘시설을 도심에서 보게 될 날이 올 겁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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