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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

입력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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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에 신자유주의가 또아리를 튼 것은 1995년 5ㆍ31 교육개혁이다. 핵심은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 자율화였다. 사실상 대학을 마음대로 짓고, 정원을 마구 늘릴 수 있게 한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학은 55개가 늘어 359개, 정원은 16만명이 증가해 66만 명이 됐다. 대학진학률은 80%를 넘었다.

-불공정한 교육여건 외면

그 결과는 뭔가. 유례없는 학력인플레와 정원미달 사태다. 대학졸업자가 늘어나는 것을 나쁘다고 만 할 수는 없지만 학력인플레는 일자리 왜곡현상을 낳았다. 모두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니 중소기업이나 공장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학생=돈’이라며 정원 늘리기에 급급했던 대학들은 이제 문닫을 걱정을 하고 있다.

자유와 자율을 기반으로 한 시장의 원리를 섣불리 교육에 접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면 사회적 이득도 최대화한다는 시장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시장의 실패’다.

어설픈 시장주의가 다시 교육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서울대 평의원회와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연일 “분권과 자율이 최상의 원리와 가치”라며 대학자율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전국 국공립대학 교수회연합회도 뒤질세라 가세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대학자율은 소중한 가치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인적자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율과 경쟁 이데올로기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가 교육의 모든 부문에 적용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인 입시영역에서는 그렇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하려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ㆍ경제적 토양과 제도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학벌체제가 심각한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강남과 강북의 교육여건과 기회가 다르고, 서울과 지방은 비교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대학들은 기득권을 양보하기는커녕 더욱 확대하려 한다. 서울대 총장이라는 사람이 “원자재가 좋아야 한다”느니 “솎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느니 하며 노골적으로 인재를 싹쓸이하겠다고 하는 판이다.

입시자율화가 대학경쟁력을 높일 거라는 주장도 수긍하기 힘들다. 사교육을 제외하고도 수업시간이 단연 세계 1위인 우리 학생들에게 누가 채찍질을 할 수 있는가. 설혹 학원과 과외에 더 매달린다고 해서 창의력이 길러지고 국제경쟁력이 갖춰지리라고 보는가.

정작 경쟁 이데올로기가 적용돼야 할 분야는 대학관문이 아니라 그 다음이다. 대학경쟁력은 신입생 성적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엄격한 학사관리와 내실 있는 교육과정, 교수들의 연구성과 등이 종합적으로 엮어져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은 어떤가.

서울의 대학이나 지방대나 비슷비슷한 학과에 교육과정, 교수진까지 큰 차이가 없다. 대학문패만 바꿔달면 이 대학인지 저 대학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모두가 붕어빵이요, 복사판이다. 이런 특성 없는 대학에서 대학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한국공학한림원에서 주요 이공계 대학 졸업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교육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5점이었다. 입시 때는 우수한 학생들을 받으려고 기를 쓰지만 받은 뒤에는 내 팽개쳐 놓는 것이 우리 대학의 현주소다.

-영재를 범재로 만드는 대학

서울대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놓고도 왜 대학경쟁력은 세계 100위 권 밖에서 맴도는지 답해야 한다. 3불 정책을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할 것인가.

아득바득 해서 영재를 받아놓고도 범재로 만드는 데 대해 자기반성을 먼저 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그렇게 시장과 경쟁이 지고지선이라면 대학경쟁력 향상과 직결된 국립대 법인화는 왜 반대하는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시장과 경쟁논리를 붙였다 뗐다 하는 것은 기득권 고수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시장이 만능이 아니라는 건 대학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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