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 대한민국을 ‘드라마 삼매경’에 빠트렸던 MBC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극본 김도우 연출 김윤철)이 21일 시청률 50.5%(TNS 미디어 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끝났다.
장모(김자옥)와 예비 사위 진헌(현빈)이 ‘울릉도 트위스트’에 맞춰 광란의 춤을 추는 장면으로 배꼽을 잡게 만들다가도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이라고 독백하는 삼순의 대사로 깊은 공감을 끌어냈던 ‘김삼순’.
‘김삼순’은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김삼순과 삼식의 연예가 계속된다는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렸다.
그 동안 드라마에 등장한 ‘삼숙이 인형’은 문구점 히트 상품이 됐고, 까마득히 오래 전 소설인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가 새삼 부활해 4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으며, OST는 음반 판매 순위 10위에 진입했다.
이처럼 강력한 ‘김삼순’ 신드롬도 여름 불볕더위가 끝나면 드라마 ‘대장금’과 ‘파리의 연인’이 그랬듯 ‘아무 힘도 없는 추억’(김삼순의 대사 중에서)으로 약화했다가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배우가 연기 잘하고 작가가 대본 잘 쓰며 연출이 이를 잘 표현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 말고도 이 작품이 새삼 확인 재확인 시켜준 흥행드라마를 위한 법칙 만큼은 당분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1. 여성판타지는 힘이 세다
여성이 주 시청 층이고 여성이 드라마 작가의 절대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에서 드라마가 여성적 기호와 관심사를 다루는 건 어제오늘의 일도, 특별한 사건도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 ‘대장금’ 이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두 번째 프로포즈’ ‘김삼순’ 등의 흥행 드라마들은 전작과 달리 전문적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여성들의 성공담이다.
‘김삼순’에서 진헌이 삼순에게 계속 매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당대에 빼어난 파티쉐(제빵사)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편, 경제적ㆍ사회적 지위를 쟁취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을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들 드라마는 ‘왕자님에 의한 구원’이란 종래 드라마의 흥행 코드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수시로 ‘지랄’이란 욕설을 내뱉는, 남성들의 시선에 비친 이상적 여성상에서 반 발짝 비켜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김삼순도 진헌이라는 꽃미남 재벌 2세와의 사랑을 두고 “이게 깨질 까봐 겁이나”라고 울먹일 정도.
그러나 신데렐라 판타지의 초점이 구원의 대상인 여성에서 구원을 하는 왕자님에게로 옮겨가, 이들 캐릭터에 보다 강한 생동감을 부여한다는 점은 과거와는 커다란 차이다.
복잡 다난한 가정사나 출생의 비밀 등으로 상처 입은 왕자님을 가난하거나 통통하다는 것 빼고는 알고 보면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21세기 신데렐라들이 사랑으로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이 흥행에 성공한 트렌디 드라마의 한결 같은 비결이다.
2. 드라마 같은 드라마는 안 통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어느 틈에 증발한 현실성을 회복하라.’
수용자 층의 수준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드라마가 얼마나 사실성이 높으냐는 작품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을 뿐더러 시청자들과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김삼순’의 전작이었던 MBC 수목 드라마 ‘신입사원’은 만화 같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대기업 LK 그룹이라는 회사와 ‘여비서’라는 술집 두 개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호평을 받았다.
‘김삼순’은 현실을 향해 한발 짝 더 나간다.
30대 싱글 삼순이는 포장마차에서 닭발과 꼼짱어 계란 말이를 몽땅 시켜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한 침대에서 자려는 진헌을 발로 밀어 떨어트리며 “니가 아니라 내가 못참을 까봐 그런다”라고 푸념한다.
‘왕자님’인 진헌은 앞에서는 예의 드라마 속 재벌2세가 그러하듯 5,000만원짜리 수표를 찢지만 상황 종료 후 남모르게 쓰레기통을 뒤지고, 피임기구를 사기 위해서 편의점을 기웃거린다.
아들 진헌이 끝까지 부모님이 식품업에 종사하는 삼순이와 결혼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는 메기여사(나문희)도, 시장에서 ‘살짝’ 일수를 놓는 삼순 모친도 극의 리얼리티를 부여하기는 마찬가지다.
3. 감동이란 케이크 위에 유머라는 달콤한 크림을 발라라
무거운 이야기라도 가볍게 풀라.
‘오!필승 봉순영’ ‘쾌걸춘향’ ‘두 번째 프로포즈’ ‘풀하우스’ ‘불량주부’ ‘신입사원’……. 2004년부터 2005년 현재까지 흥행작을 살펴보면 80% 이상이 코믹한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들이다.
삶이 팍팍하고 벅찬 시대에 시청자들은 무겁고 우울한 내용의 드라마보다는 잠깐이나마 웃음과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코믹 드라마를 선호하고 있는 것.
노래방에서 혼자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먹던 해장국을 계약 연예를 제안하던 진헌의 얼굴에 내뿜는 삼순.
휴지가 없어서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쩔쩔 매지 못하는 진헌…….
‘김삼순’도 연애와 삶에 관한 성찰이란 진지함에 웃음이라는 설탕물을 바름으로써 시청자들을 유인해내는데 성공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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