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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法治를 흔드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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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法治를 흔드는 손

입력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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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 명 이상을 사면했던 1998년의 대사면을 뛰어 넘는 대사면이 계획되고 있다. 수혜자가 600만 명이 넘는 생계형 경제사범에 대한 대사면이 단행될 것이라고 하며, 최근에는 경제인, 노조관련자 등 사면대상의 추가적 확대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는 비리 정치인들을 끼워 넣는 사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주류를 이루는 생계형 경제사범에 대한 사면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과연 이렇게 대규모 사면이 수시로 단행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많은 국민이 범법자의 굴레를 벗을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면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다른 아무런 문제도 야기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사면의 본질과 기능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사면제도는 군주시대의 유물로서 법원의 사법절차에 의해 형이 확정되었거나 집행중인 사람들에게 이를 면제시켜 주거나 감형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법치주의와 충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00만명 대규모 사면 논란

그러나 법원의 판결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 그리고 법적으로는 옳은 판단이라 하더라도 국익을 위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법권을 존중하며, 법치주의가 확립된 선진국들에서도 사면제도를 여전히 존치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면은 말 그대로 예외로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만일 수시로 사면이 행해지고, 그 대상이 원칙과 예외를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 된다면 엄격한 법집행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안 갚아도 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안 갚고 기다리면 채무면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심리로 인해 빚을 갚지 않는 사람들이 폭증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처벌되지 않는다 하면, 그 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은 불법이라고 하지만 내년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사면될 수 있다고 기대하게 될 있을 것이며, 심지어 법을 지키는 사람들만 바보로 취급될 수도 있다. 결국 사면이 준법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생계형 경제사범은 파렴치범과는 달라서 특별히 고려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면이라는 해법이 과연 최선의 대안인지는 의심스럽다. 생계형 경제사범은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그러면 현재 처벌 받고 있는 사람들은 사면하고, 앞으로 발생될 생계형 경제 사범들은 그냥 처벌 받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수시로 사면을 할 것인가?

결국 생계형 경제사범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면을 통한 해결은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차라리 생계형 경제사범에 관한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을 통해서 처벌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분명하게 나누고 이를 통해 장래에도 일관성 있는 법적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더구나 비리 정치인들을 사면대상이 포함시키는 것은 전혀 사면제도의 의미에 부합되지 않는다. 예컨대 독재정권 하에서 부당하게 처벌받고 있던 - 예컨대 반독재투쟁을 하던 - 정치인들을 사면하는 것은 독재 완화의 정치적 제스처로서, 혹은 국민화합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비리 정치인들을 사면하는 것이 어떻게 국민화합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정략적으로 남용돼선 안돼

특히 사면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그것이 정략적 이해관계를 위해 남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사면권을 행사하듯 해서는 민주화의 의미 자체가 퇴색될 것이며, 사법적 판단을 뒤집는 행위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없이 사면권이 행사되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법대 장영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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