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입수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미림’팀의 불법 도청 테이프에는 1997년 대선자금 지원에 대해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당시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주미 대사(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나눈 대화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C와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모 (대선)후보 측에서 30억원을 요구해 왔다’, ‘그 쪽에서 (돈 전달 과정에) 한 사람 이상 관련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돈을 현찰로 바꿔 전달하는 문제가 거론되면서 삼성그룹의 ‘○○○를 시켜라’는 취지의 얘기도 언급됐다. 두 사람 대화 중 ‘한쪽만 할 경우 저쪽(다른 대선 후보 진영)에서 알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우려가 있자, ‘B후보 보다 A후보 측이 문제다. B후보 쪽에도 조금은 한 걸로 알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테이프는 1997년 9월 초께 서울 S호텔의 한 식당에서 1시간 30분 가량 도청한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이프에는 대화자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도청 테이프의 녹취록을 접했던 국정원 관계자는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중앙일간지 고위층과 모 재벌그룹 고위 인사가 나눈 대화로 안다”며 “요약 보고서에는 대화자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대화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비록 공소시효 문제로 불법 정치자금으로 인한 처벌은 피할 수 있다고 해도 삼성그룹과 중앙일보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가 모두 수천 개에 이를 것이란 추정까지 나오는 상황이어서 도청 테이프가 추가 폭로될 경우 수많은 정ㆍ관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무더기로 쏟아질 수 있어 사상 최대의 ‘게이트형 스캔들’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일부 안기부 관련자들은 MBC 테이프와 관련, “부분 부분 사실일 수 있지만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하기도 해 테이프 내용이 공개되더라도 진위를 둘러싸고 또다른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MBC가 입수한 테이프가 1시간 30분 전체 분량이 아닌 일부라는 추론도 내놓고 있다.
이 테이프는 김영삼 정권 당시 가동됐던 안기부 미림팀의 ‘작품’ 중 하나로, 미림팀은 전화 감청을 통해 두 사람이 서울의 S호텔에서 만나는 것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도청장치를 설치해 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청 테이프는 당시 녹취록과 보고서 형태로 안기부 핵심 수뇌부에 전달됐고, MBC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전직 안기부 직원 김모씨를 통해 이 테이프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 안기부 개혁과정에서 옷을 벗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도청을 직접 수행한 미림팀에 속하지는 않았으며, 또 다른 옛 안기부 직원으로부터 테이프를 넘겨받아 보관해 온 것으로 알려져 테이프는 2~3단계를 걸쳐 MBC에 전달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씨는 삼성그룹에 이 테이프를 담보로 거액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거절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 '미림팀' 이란
소위 ‘MBC-X파일’로 불리는 불법 도청 테이프를 만들었던 ‘미림’팀은 김영삼 정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가동했던 도청을 위한 비밀특수조직을 뜻한다.
미림팀은 1993년부터 98년2월까지 5년에 걸쳐 활동하며 정계 재계 언론계 핵심 인사들의 대화 내용을 현장에서 불법 도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정식집이나 단골 술집에 속칭 망원(일반인 협조자)을 심어 예약 정보를 입수한 뒤 미리 도청기를 설치하고 옆방에서 엿듣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림팀의 도청 테이프는 안기부 내에서도 안기부장과 국내정보담당 1차장 등 핵심 수뇌부에게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 테이프는 8,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안기부장 특보였던 홍준표의원은 “미림이란 이름은 들은 기억이 없고 미감(미행감시)팀이라고 들었다”며“8시간 3개조 24시간 운영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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