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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권 교수의 가정주치의] (2) 피로가 만병의 근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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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권 교수의 가정주치의] (2) 피로가 만병의 근원인가?

입력
2005.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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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자 회사원 김씨가 피로감을 호소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며 일을 조금해도 쉬 지치고 피로하다면서 “몸이 이렇게 좋지 않으니 어떤 병이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합니다. 또 “피로는 만병의 근원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원인을 찾아 회복하고 싶다”고 합니다.

모든 증상이 그렇지만 특히 피로감은 아주 주관적인 증상입니다. 또 모든 질병에 동반되는 증세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신체질병 없이도 생활 중에 아주 흔히 나타나고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흔히 동반됩니다. 꼭 병을 의심하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오래 계속되면 생활에 지장을 주므로 적절히 대처해야 합니다.

피로를 잘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증세를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그냥 피곤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평소 하던 일을 할 수 없거나 특정 근육을 움직일 수 없다든지 일하다가도 포기하고 드러누워야 한다는 식이면 신체질병을 의심해볼 만 합니다.

또 증세가 몇 년 째 계속되었다는 것보다 몇 주 전부터 뚜렷이 심해졌다면 한번쯤 신체질병 유무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피로하면 신체질병보다 정신적인 원인일 수가 있지만, 일할수록 혹은 오후가 될수록 더 지친다면 신체 질병을 더 생각합니다.

신체 질병은 피로감 외의 여러 가지 동반 증상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로 원인은 의학 교과서에 수십 줄 나열되어 있을 정도로 많지만 대개 이런 병은 피로감 뿐 아니라 여러 특별한 증상이 동반되기 때문에 간단한 진찰과 검사로 원인을 밝히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특별한 신체 질병이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김씨는 그래도 몸에 뭔가 이상이 있으니까 피로하지 원인이 없을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피로를 호소하는 환자의 상당수에서 그 원인을 정신적이거나 일상의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체질병 외에 정신건강의 문제 중 가장 대표적인 병이 우울증이며 기타 불안증, 적응장애도 흔히 피로를 동반합니다. 병은 아니더라도 피로의 생리적 원인도 많습니다.

과로, 충분하지 못한 휴식, 주로 앉아 지내는 생활과 운동부족, 소음, 진동, 고열 등의 환경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수면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하루 7~8시간의 수면을 취해야 합니다. 공장의 노동환경 뿐 아니라 사무직 근로자의 작업 환경이 피로를 일으키는 경우도 흔합니다.

책상이나 의자가 인체공학에 잘 맞게 설계되어 있지 않으면 작업 자세가 바르지 않게 되고 근육이 너무 긴장돼 근육통, 피로감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피로 증세를 잘 살펴보고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이켜 봄으로써 충분히 피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책으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운동과 스트레스 해소입니다. 운동이 부족하면 근육의 지구력이 떨어져 조금만 힘든 일을 해도 쉽게 지치는 것은 당연하므로 근력과 지구력을 보완할 수 있는 규칙적인 운동으로 피로를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피로 원인을 찾아 “피로야 가라!”하고 큰소리 칠 수 있는 처방을 기대했던 김씨는 조금 실망하는 눈치를 보입니다. 정력적인 활동과 그것에 걸맞은 빛나는 성과를 이룬 사람이 자주 미디어에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각 개인의 활력 기대치가 높은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높은 기준에 견주면 나의 피로감은 열패감에 빠져들기 충분하지요. 피로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믿는 김씨에게 역설적으로 피로의 순기능을 말하면 지나칠까요?

쉴 틈 없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피로감은 어쩌면 그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적응하는 길일 수도 있다.

특별한 신체 질병 없이 피로를 느낀다는 것은 우리 몸의 은밀한 곳에서 더 큰 이상이 오기 전에 “이제 조금 쉬라”는 경고와 우리 몸을 보호하려는 구조의 신호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런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재조정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피로라는 증세는 우리에게 좀 귀찮기는 해도 아주 고마운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피로가 만병의 근원이 아닙니다. 피로는 다만 생활인의 흔한 증세일 뿐입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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