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낙태 전쟁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과거 낙태 합법화에 반대했던 존 로버츠(50) 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새 연방 대법관에 지명함에 따라 낙태 합법화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갈등이 다시 불 붙었다.
낙태 합법화는 미국의 윤리적 논란의 핵심이다. 1973년 연방대법원이‘로 vs 웨이드’ 사건 판결이 나온 후 30여년간 보수 진보 양 세력은 공방을 벌여왔다.
사건은 69년 가명 ‘제인 로’로 알려진 노마 매코비(25)라는 여성은 자신이 임신한 세 번 째 아이는 강간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산모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한 어떤 낙태도 금지한다는 텍사스 주 법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것. 주법원에서는 패소했지만 야심 많은 여성 변호인 사라 헤인즈가 사건을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가 7대2로 위헌판결을 얻어냈다. 미국 전역에서 3개월 내 낙태금지를 규정한 모든 법규를 무효화시킨 기념비적인 판결이었다.
일격을 맞은 기독교단체와 보수시민단체는 이후 ‘법원에 보수적 판사 보내기 운동’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주 정부와 법원에서는 갈수록 낙태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법과 판례가 잇따라 채택됐다.
그러다 보수진영은 연방대법원의 아성 만큼은 무너뜨리지 못했다. 92년 ‘가족계획 vs 케이시’ 사건에서 로 vs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 했지만 다시 5대4로 분루를 삼켰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때 새로 임명된 6명의 대법관이 대체로 보수 성향이었던 만큼 낙태 반대 쪽으로 기우는 듯 했으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최근 사임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 등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낙태 찬성의 손을 든 것이다.
로버츠 판사가 지명된 것은 진보세력에겐 큰 위기다. 그는 1991년 법무부 연방 부 송무실장으로 일할 때 작성한 의견서에서 “로 vs 웨이드 판결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의 부인이자 변호사인 제인 설리반 로버츠는 낙태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로버츠 판사는 이후 항소법원 판사 인준청문회에서 “로 vs 웨이드 판결을 존중하겠다”면서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그가 임신중절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는 쪽의 입장을 분명히 할 경우 30년 동안 이어져 온 낙태 허용의 법적 기반은 무너지게 된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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