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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박사의 뉴스 속의 과학] 실패가 낳은 대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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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박사의 뉴스 속의 과학] 실패가 낳은 대발견

입력
200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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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라디오를 듣다 보면 가끔 ‘휘이익, 휘이익’ 하면서 휘파람 소리 비슷한 잡음이 나올 때가 있다. 1960년대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 전화통화나 라디오에서 그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많다. 이 휘파람 소리 같은 잡음을 ‘휘슬러(whistlerㆍ휘파람)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잡음은 1880년대 전화기 보급 초창기부터 목격됐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엔 군사적 이유 때문에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바크하우젠 등을 중심으로 심층 연구가 시작됐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개가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심증’만 제기됐을 뿐 정확한 발생 이유에 대해서는 과학적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다시 휘슬러 현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군사용 라디오가 계속해서 잡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오웬 스토레이는 1953년 “휘슬러 현상은 아마도 지구 상공에 존재하는 ‘플라즈마(plasmaㆍ전리층)’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실제로 지구 상공 100㎞ 근방에는 플라즈마로 이루어진 방사선대가 존재하는데, 1958년 이를 발견한 미국 물리학자 이름을 따서 ‘반 알렌층’이라고도 부른다.

알렌은 대기 중에 존재하는 전자의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소형 로켓을 발사했다. 그런데 로켓의 계측기는 어찌 된 일인지 거의 타버릴 정도로 방사선에 노출된 상태로 돌아왔다. 탐지된 전자의 농도는 기계의 허용범위를 넘어버렸고 실험은 대실패로 끝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과학용 소형 로켓은 대단히 비싼 물건이었는데, 이를 사용한 실험이 완전 실패했으니 주변의 걱정은 대단했다. 하지만 알렌의 대응은 달랐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훨씬 용량이 큰 계측기를 탑재한 두 번째 로켓을 발사했다. 그 결과 그때까지 가설로만 존재하던 대기의 방사선대가 처음 발견됐다.

다른 사람들이 “이 실험은 대실패야”라고 생각할 때 알렌은 오히려 실패의 원인을 대발견으로 연결시켰다. 계측기가 타버릴 정도로 강력한 방사선이 존재한다면, 실제로 그것은 당시 상식을 뛰어넘는 발견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즈는 1956년 자기 사무실에 새로 등장한 ‘컴퓨터’라는 기계로 기상 예측 프로그램을 실험해봤다. 컴퓨터의 계산과정을 정확히 들여다보기로 결심한 로렌즈는 한 번의 실험을 마친 후 중간 값을 끄집어 내 그 시점부터 프로그램을 다시 돌려보았다. 이를 위해 그는 수치들을 손으로 입력하고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결과는 첫번째와 같아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값이 나왔다. 당황한 로렌즈는 컴퓨터의 오류를 의심하면서 계산 실패의 원인을 면밀히 조사했다. 분석 결과 그 차이는 손으로 입력한 값의 유효숫자 개수(자릿수)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컴퓨터가 계산한 중간 값이 2.313131이었다면, 로렌즈가 입력한 값은 2.313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거의 정 반대인 두개의 결과를 설명하기엔 불충분했다. 당시 상식으로 그 정도 차이가 거의 정 반대의 결과를 발생시킨다고 상상하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2.313131과 2.313의 차이는 0.000313에 불과하다).

로렌즈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었겠지”라고 실패를 인정한 후 다른 연구로 넘어가는 대신, “이 현상은 새로운 연구분야에 대한 시작일지도 몰라”라고 바꾸어 생각했다. 바로 ‘혼돈이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영화제목으로도 사용된 ‘나비효과(매우 사소한 사건이 의외의 거대한 결과를 야기한다)’도 이 같은 사소한 실패에서 비롯된 셈이다.

큰 인기를 누린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오늘 막을 내린다. 이 드라마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 이유는 큰 실패를 하나씩 안고 있던 주인공들이 저마다 나름의 희망을 찾아가는 건강한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파트 정책이 실패했다’, ‘경제가 추락한 후 반등하지 않는다’, ‘개인 파산이 늘고있다’…. 여러모로 피곤한 뉴스가 많은 요즘이다. 실패 때문에 실망했다면 낙담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 보시라. 식상한 말이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과학의 역사가 이를 웅변한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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