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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아프지 않은 '자사 비판'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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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아프지 않은 '자사 비판' 프로

입력
200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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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TV를 보고 있노라면 리모콘을 손에 들고 끊임없이 채널을 바꾸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광고라서 돌리고, 지루해서 바꾸고, 다른 채널 궁금해서 또 돌려대는 모습이 한심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왜 채널을 계속 바꾸는지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은 ‘재미있는’ 내용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거운 교양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시키는 경우일지라도 거기에는 내 흥미를 끄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도 잘 알고 있다. 하루하루 시청률을 성적표처럼 받아드는 제작진에게 있어서는 뉴스조차에도 ‘재미’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공중의 재산이기도 한 주파수를 사용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에게는 스스로를 엄정하게 비판할 의무가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비판이 아니라 ‘재미’일지라도 보다 ‘질 높은 재미’를 만들기 위한 철저한 비판이 있어야 하고, 이는 법으로도 규정되어 있다.

방송법 제89조는 종합편성을 하는 방송사의 경우 주당 60분 이상의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한다고 적시한다. 그 결과물이 토요일 낮이면 세 지상파 방송사가 나란히 방영하는 소위 ‘옴부즈맨 프로그램’들이다.

옴부즈맨 프로그램들의 원초적 딜레마는 이 프로그램들 역시 TV를 통해 방영되고 시청률이 계산되는 보통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되도록 지루하지 않고 많은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내용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하긴 ‘미디어 비평’이라는 제목의 이 글도 누군가가 읽을 때 비로소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다 보니 한 때는 ‘한낮의 TV연예’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연예인이나 자사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웠던 시기도 있었다.

비판은 쉽지만 매 주 60분씩 스스로를 다양한 시각과 방식으로 비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사적 차원에서 잘 아는 동료들이 만든 자사 프로그램들이기에 냉정하게 비판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많은 PD나 작가들이 옴부즈맨 프로그램 제작에 별로 협조적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시청자 비평에 의존하는 제작 방식도 대표성 측면에서 그리 떳떳하지 않다.

여러 논의를 통해 걸러지고 선택된 시청자 의견이라 하더라도, 비판의 대상이 된 프로그램의 제작진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주 꿋꿋하게 스스로에게 매를 드는 이 프로그램들의 노력이 대견하기도 하다.

하지만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모순은 도덕적으로 보수화 될 수밖에 없는 자기비판의 본질적 한계이다. 비판의 근거는 여전히 교과서적이지만, 그 동안 시청자들은 TV 속 언어나 장면들에 대해 상당히 관대해졌기 때문이다.

원래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방송사 스스로 자기 비판을 하면서 프로그램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시청자들의 건전한 의견을 반영하여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의도도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 혹은 ‘법에 의해 강요된 비판’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변화에 대해서도 민감해야 하지 않을까?

방송사들이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한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과연 그 성과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도 지금 같은 비슷비슷한 포맷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때이다.

60분이라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별로 ‘비판’같지 않은 코너도 여기 저기 만들고, 정작 비판을 할 때는 청소년 대상의 윤리강좌가 되곤 하는 현실은 옴부즈맨의 본질적 정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60분이 쓸데없이 길다면 법령 개정도 고려해야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무모하다면 비판보다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혹독한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적이 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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