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경기 화성시 향남면구문천리. 야트막한 야산옆사잇길에서 잔잔한 앙상블이 울려퍼졌다.
화성시 청소년 교향악단의 현악 4중주에 단장 윤왕로(44)씨가 트럼펫,윤씨의 아들 호진(13)군이 코넷을 연주했다. 청중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람이 없었을 뿐, 청중이 없었던 것은아니다. 이곳 야산에 사는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가 청중이었다. 숲속에둥지를튼100여마리의 철새들은연주가 시작되자 의젓한 청중으로 변신했다.
이 음악회는 화성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여름 철새를 위한 숲속 음악회’. 철새 서식지인 높이 40~50m 의 이 야산을 관통해 발안 산업단지로 연결되는 향남면 구문천리~평택시 청북면 삼계리 간 2차선도로(3.5㎞) 개설에 항의하기 위한 음악회였다. 연주곡은 새들이 산란기인 점을 고려해 선정됐다.
태교 음악으로 잘알려진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바흐의 ‘미뉴에트’, 브람스의 ‘왈츠’,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 등 이었다. 아일랜드 민요 ‘오목동아’와 우리 가요 ‘사랑으로’가 연주될 즈음에는 마을 주민과 방학을 맞은 어린이 20여명이 초대받지 않은 청중으로 찾아왔다. 구문천리 일대에는 5종1,000여쌍의 여름 철새가 서식하고 있다.
새들은 도로가 뚫리면 꼼짝없이 갈곳을 잃게 될 판이다. 환경단체들은 야산을 우회하는 도로 개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사를 발주한 경기도는 “철새들은 어차피 떠도는 것”이라며 현 노선을 고집하고 있다. 화성 환경운동연합 이홍근(41) 사무국장은 “이번음악회는 자연과 교감하고 공존하려는 사람들의 작은 몸짓”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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