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이튼스쿨을 지향하는 중고 일관교(一貫校)인 사립 가이요(海陽)중등교육학교에 문부과학성 현직 관리가 파견돼 학교 설립작업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밝혀져 일본 교육계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 양성”을 기치로 도요타자동차, JR도카이(東海), 주부(中部)전력 등 거대기업이 공동 출자해 내년 개교하는 이 학교는 일본 정부의 교육방침인 ‘여유있는 교육’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상징이다.
그런데도 문부성 관리가 이 특수 사립학교의 개교작업을 주도한 것은 최근 학력저하를 이유로 ‘여유있는 교육’을 폐기하려는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장관 등 보수적인 문부성 상층부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문부성은 가이요에 출자한 JR도카이의 요청에 따라 현직 관리를 2003년 1월부터 이 학교에 1년간 파견했다. 명목은 ‘사원교육제도의 현상파악과 지도’. 그러나 이 관리는 학교부지 선정과 학교설치 허가신청 준비 등 개교 실무작업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이 학교가 모델로 삼고 있는 영국 이튼스쿨을 직접 시찰하기도 했다.
일본의 관민교류법은 파견 관리가 파견계획서에 기재된 내용과 다른 업무를 수행할 경우 인사원 총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JR도카이는 인사원에 허가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교류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사회가 점점 보수 우경화하면서 성적 보다 창의력을 중시하는 ‘여유있는 교육’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드러난 특이한 ‘관민 협조’라는 시각도 있다. 나카야마 장관 등 일본의 보수 우익 정치인들은 ‘일본적인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이 학교 설립에 전폭 지지해왔다.
또 일본 정부가 이 학교를 향후 교육정책의 방향을 수정할 경우 하나의 모델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문부성 관리 파견에 적극 찬성한 사토 사다카즈(佐藤楨一) 전 문부성 사무차관(현 유네스코 대사)은 “공립학교에서 할 수 없는 일도 사립에서는 가능하다. 학교는 다양한 것이 좋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비싼 학비(6년간 1,500만엔) 등을 들어 ‘있는 사람만을 위한 학교’라는 비판을 의식한 학교측은 올들어 대대적인 장학금 지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존 사립 명문 중ㆍ고들이 “우수학생을 입도선매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나서는 등 이 학교는 일본 교육계에서 끝없는 화제를 뿌리고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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