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이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 누설 사건을 주목하는 근간에는 조지 W 부시 정부의 도덕성 문제가 깔려 있다.
부시 정부의 관리들이 이라크 정책의 비판자를 흠집내기 위해 안보상의 기밀을 언론에 흘렸다면 미국 정치의 혈관을 타고 흘러온 ‘더러운 술수’가 부시 정부에서도 그대로 확인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CIA 요원 신분을 누설하면서까지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쌓으려고 한 것이 드러나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시 정부의 정당성은 실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주류 언론들은 대형 정치적 스캔들에 붙여온 ‘게이트(gate)’란 명칭을 이 사건에 다는 데 주저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19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사건 관련자의 법적 책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누설자와 그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사건을 기사화한 타임의 매튜 쿠퍼 기자 등 관련자의 증언으로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이 최초 누설자로 지목되고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까지 등장하는 등 관련자들의 폭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플레임의 신분 정보를 부시 정부의 관리들이 공유하면서 이를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이냐는 여부다. 그동안 로브의 신분 누설 관련을 완강하게 부인하던 백악관측은 누설 자체는 시인하면서 의도성은 부인하고 있다.
로브 차장 측은 오히려 기자들이 ‘믿지 못할’ 윌슨 전 대사의 주장을 따름으로써 오보를 할 가능성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로브 차장은 매튜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플레임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그녀가 대량살상무기(WMD) 업무를 다루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 법에서 금지한 신분을 발설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으로 법적 책임을 피하려 하고 있다.
로브 차장이 이 사건에 휩쓸려 낙마하느냐도 관심의 대상이다. 민주당이 공격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로브 차장에 겨냥하는 데는 그가 부시 정부 내에서 갖는 정치적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로브 차장에 대한 공격을 통해 집권 2기 부시 정부 및 공화당과의 국내외 정책을 둘러싼 싸움에서 기선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친구이자 재선의 일등공신이며, 정책의 조율사인 로브를 내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브 차장이 범죄 행위로 기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의 정치 공세만으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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