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취미를 물으면 다들 별 생각 없이 “독서”라고 답했다. 물론 다 믿을만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때도 “일본 등 선진국의 독서열을 배우자”는 얘기를 자주 들었으니까. 딱히 여가나 다른 재미란 게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냥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이렇게라도 독서를 취미로 꼽는 이는 드물다.
당시 별 인연 없어보이는 이들의 입에까지 걸핏하면 불려 나오던 독서의 자리를 지금은 영화, 인터넷 등이 대체했다. 워낙 잘 휩쓸리고, 잘 쏠리는 풍토이다 보니 활자이탈 현상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도 여간 유난스럽지 않다.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한국인들이 책을 가장 읽지 않는다는 결과를 냈다. 조사대상 30개국 중에는 경제규모나 위상이 우리보다 크게 떨어지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인문사회과학책들에 이어 소설류도 초판 제작권수가 1,500권 수준으로 떨어졌다. 종전 ‘10만부 보장’ 등을 운위하던 대가들의 책도 1만부 넘기기가 힘들다. 그나마 팔리는 책이라야 경제, 처세 따위의 실용서들 뿐이어서 중학교 교과서에 간단하게 실린 작품이나 작가 이름만 까먹지 않고 있어도 웬만한 지식인 폼을 잡을 수 있을 판이다.
상황이 이러니 뜻 있는 이들의 책 읽히기 노력은 안쓰러울 정도다. 도서관 신설, 북 스타트 운동 등을 벌여온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본부’가 이번엔 문예진흥원과 ‘우수문학도서 작가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책을 거저 주고 저자까지 만나게 해주는 행사다. 그래도 재미없어 할까 봐 작품을 랩으로 부르는 공연까지 준비하고 있으니 이런 안간 힘도 없다. 청소년기에 독서습관을 길러주겠다고 교육부는 ‘독서 이력철’ 제도를 고안해 냈다.
국.영.수처럼 책 읽기도 성적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독서행위와 사고의 획일화, 단순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 위기의식 만큼은 십분 공감할 만한 것이다.
사실 종이에 인쇄된 활자(물론 신문도 포함된다)를 읽는다는 건 인내와 노력을 요하는 일이어서 이렇게 해도 효과를 장담키는 어렵다. 잡다한 정보나 재미만 좇자면 인쇄활자는 인터넷, 영상매체와 애당초 비길 바가 아니다. 하물며 사는 일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요즘에야. 하지만 책 읽기를 당장의 경제적 효과나 효율성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대저 개인의 직접경험이란 아무리 풍부한들 동질적 경험의 확대재생산이기 십상이다. 사고나 인식의 지평 확대는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이나 영상매체로도 다양한 간접경험이 가능하지만, 여기선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생략된다. 흥미없는 내용엔 단 몇초도 시선을 두지 못하는 조급함과 가벼움에는 진지한 사고과정이 끼어 들 여유가 원천적으로 없다.
사회가 갈수록 아집과 독선, 이기주의로 강퍅해지고 있는 것도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다른 인식, 다른 세계를 도무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무비판적인 쏠림 현상 역시 부박한 독서풍토의 이면이다. 활자이탈이 방치되면 자칫 민주주의의 기본토대마저 붕괴, 급기야 우중(愚衆)사회가 도래할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장마도 끝나 곧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주5일제로 일상에의 쫓김도 한결 덜해졌을 터이다. 그러니 다들 책 속에 모처럼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이번 휴가여행 때는 배낭 속에 향기로운 고전이나 문학 책 한권 쯤 넣고 떠날 일이다.
이준희 문화부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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