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왜 절 낳으셨나요. 차라리 알로 까서 후라이해 드시지!”(‘너에게 가는 길’ 261쪽)
2001년 등단한 젊은 작가 손홍규씨가 첫 소설집 ‘사람의 신화’(문학동네 발행)의 귀퉁이에 대수롭지 않게 던져 둔 저 통렬한 위악의 문장은, 그 거침없음으로 언뜻 유쾌했으나 지그시 오래 복장을 눌렀다. 그것은 표제작을 여는 첫 문장 “나는 사람이 아니다”(9쪽)와의 대비로 더욱 그러했다.
두 문장이 놓인 맥락은 사뭇 다르다. 교통사고 뺑소니로 옥에 갇힌 조폭의 탄식으로 쓰인 첫 문장은 일탈에 대한 도덕적 반성 혹은 자학인 반면, 두번 째 것은 ‘사람’이라는 종족 자체에 대한 선언적인 반감을 토로한 문장이다. 다시 말해 하나가 보편규범 혹은 질서에의 긍정이라면 아래 문장은 단호하고 철저한 부정인 셈이다.
표제작의 ‘나’는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 9남매 중 막내. 위로 여덟 명의 형과 누나가 있었지만 둘째 형은 상이군인으로 살다가 죽고, 셋째 형은 ‘80년 광주’에서 숨졌다.
막내 누나는 강간을 당해 실성하고, 넷째 형은 범인을 죽이려다 살인미수로 체포된다. 큰누나 역시…. ‘나’의 눈엔 “남은 여섯도 언제 죽을 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건 마찬가지”다. 하면 ‘나’는? ‘나’는 선천성 불구에 언어장애까지 있어 늘 골방에 갇혀 지낸다. 돈 벌러 도시로 가는 둘째 누나는 “왜 태어났니, 차라리 죽어버리지. 아니, 태어나지를 말지”(23쪽)라 말한다. 그러니 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고달픈 존재다.” 그런 ‘나’가 스스로 사람이 아님을 자각하고 과시하는 방식은 사람의 언어가 아닌 나만의 언어, 사람 아닌 것들과의 소통에만 소용되는 언어를 쓴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의 종족이 멸종된 이유도 사람의 언어에 흡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끝내는 사람의 언어를 택하고 만다. 실성한 막내 누나가 스스로 가위로 몸을 찔러 피투성이 몸으로 ‘나’에게 안겨 숨을 거두고, 그렇게 잦아드는 숨결 앞에 ‘나’는 사람의 언어로 말한다. “사랑해. 누나.”
책에 담긴 나머지 8편의 단편들은 ‘사람’이 되어버린 ‘나’의, 고단하고 스산하고 막막하고 참혹한, 하지만 사람으로서 “곱다시 내 몫”인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겠다.
그것은 어쩌면 업(業)의 회로처럼 출구 없는 순환상인 듯도 하다. 그 폐쇄의 환(環) 안에서 처음 두 문장이 유지하는 긍정과 부정의 괴리 혹은, 심리적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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