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TV 드라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샤워를 하고 셔츠를 갈아입고 수영장에 가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에서는 벗은 남자의 이미지가 넘치고 ‘미스 코리아’가 아닌 ‘섹시 가이’를 뽑는 선발대회도 생겼다.
역사 이래 늘 욕망의 대상으로 타자화 되어온 여성들도 이제는 더 이상 남성의 육체에 대한 품평을 꺼리지 않는다. 남자도 언제든 관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대이니 21세기 새로운 육체와 욕망의 성전인 피트니스 클럽에서 자신들의 몸을 갈고 닦을 수 밖에.
남자의 육체를 바라보는 이 같은 시선의 급선회는 어떻게 가능해 진 것일까? ‘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 ‘20세기 시각 예술’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영국의 미술사학자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는 남성 누드와 나체에 대해 서양인들이 그간 보여온 태도를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힌트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벗은 남성의 육체를 형상화한 작품에 대한 태도는 당대 사회의 가치관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한다. 전사계급의 훈련을 위해 체육 활동을 중시했던 그리스에서는 남성의 누드를 표현한 숱한 조각상과 도자기가 제작됐고 이러한 전통은 로마에까지 이어졌다.
이들에게 벗은 몸은 신과 가장 닮은 것이었고 그것은 오로지 남성만이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의 부정을 통한 구원을 꾀한 기독교가 서양을 지배하게 되면서 이러한 태도는 싹 바뀌어 르네상스 전까지 남성의 벗은 몸은 금기시된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양 미술에서 남성 누드는 종적을 감춘다. 성적 충격을 우선시했던, 회화의 궁극적인 구매자이자 향유자였던 부르주아지들 취향을 철저하게 반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위에 서서 사회의 가치와 통념을 공격하고 뒤흔들려 했던 아방가르드 운동과 동성애 운동을 통해 남성의 누드는 부활했다.
그리고 남성의 육체를 성적ㆍ심미적 대상으로 즐기고 수용할 수 있는 계층이 사회적 발언권을 얻어감에 따라, 남성 누드는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성질로 변신하고 있다.
몸의 상품화가 전방위에 걸쳐서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남성의 육체도 하나의 소비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 독특한 시각과 고대 그리스의 대표 조각상 중 하나인 ‘디스코볼로스’부터 앤디 워홀의 팝 아트까지 160컷이 넘는 자료가 인상적이지만 내용이 다소 난삽한 것이 흠이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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