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기꾼 개자식을 누군가 교도소에 쳐넣어야 합니다.”
‘사기꾼 개자식’은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졌을 때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다.
인용문은 닉슨이 임명한 워렌 버거 연방대법원장이 워터게이트 재판에서 닉슨을 봐주려고 애쓰는 꼴을 본 재판연구관이 동료들에게 돌린 의견서의 구절이다. 워터게이트를 터뜨린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쓴 ‘The Brethren(연방대법관들)’에서 인용했다. 한국서는 ‘판사가 나라를 살린다-연방대법원 비사’(안경환 역, 철학과 현실사)로 나왔다.
재선에 혈안이 된 닉슨은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 선거운동본부를 도청하려 했다. 우드워드가 특종기사로 폭로했다. 특별검사가 수사에 나섰다. 닉슨의 도청 지시를 입증해줄 백악관 녹음테이프의 법원 제출 여부가 쟁점이 됐다.
닉슨은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와 권한”을 들먹이면서 자기가 임명한 대법원장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들은 사실관계로나 법률적으로나 정밀했고, 개자식 의견서가 도는 분위기에선 대법원장도 대통령을 봐주기 어려웠다. 대법원은 증거물을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대통령은 사임했다.
우드워드에게 워터게이트를 제보한 딥 스로트(익명의 취재원)가 연방수사국(FBI)의 2인자였던 마크 펠트라는 사실이 지난달 33년 만에 밝혀져 게이트와 신문이라는 화두가 다시 토론되고 있다. 우드워드가 펠트를 이용한 것인가, 닉슨에게 앙심을 품은 펠트가 우드워드를 이용한 것인가 하는 곁가지 얘기들도 나온다.
와중에 워싱턴에는 워터게이트와 닮은 리크(Leak)게이트가 터졌다. 2003년 1월 옛 닉슨처럼 재선에 혈안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가 핵 원료인 우라늄을 니제르에서 구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주재 미국 대리 대사가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 시도는 사실 무근”이라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부시에게는 뼈아픈 글이었다.
이어 뉴욕타임스와 타임에는 윌슨의 부인 발레리 플레임이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누가 정보기관원신원보호법을 어기고 비밀요원의 신원을 흘렸는가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가 임명됐다.
2년을 끌어오며 큰 관심을 못 끌던 수사는 올해 7월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가 법정모독죄로 구속되면서 화제가 됐다. 신문들이 사건에 다시 달라붙으면서 부시의 특급참모인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이 딥 스로트임이 드러났다.
로브는 윌슨을 공작원 마누라에게 좌지우지되는 부실한 남편으로 몰아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리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밀러가 로브 같은 부류들의 공작성 제보에 의존해온 기자라고 폄하하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워터게이트를 다룬 영화 ‘대통령의 음모’에서 우드워드 역을 맡았던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워터게이트와 지금 상황은 굉장히 유사하지만 신문은 어디에 있나”라고 촌평했다. 자기 영화의 핵심은 “딥 스로트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사건을 파헤치는 저널리즘”이라면서 요즘 신문을 개탄했다. 게이트의 몸통, 즉 ‘사기꾼 개자식’을 공략하지 못한다는 불만인 것 같다.
게이트와 신문은 동반하기 마련이고, 신문은 잠시 딥 스로트에게 이용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이트는 권력의 생리가 생산하는 것이지, 신문이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우여곡절은 있어도 신문은 게이트를 추적하면서 권력의 동반자가 아니라 적이라는 제자리를 찾아 간다. 미국 신문들은 다시 취재에 나섰다.
신윤석 국제부 부장대우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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