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행태는 변화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 왔고 그 중 하나가 제도중시론이다. 제도의 변경을 통해 정치인의 행태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유권자들이 후보 아닌 정당에 투표하고 정당별 득표에 따라 의원을 선출한다면 정치인들이 선거를 위한 개인조직을 가져야 할 필요는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정당중심의 선거운동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의 당선자를 내는 제도를 사용하게 되면 같은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정치인들은 서로 경쟁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고, 선거를 위한 개인적 정치자금의 수요도 높아지게 된다.
중대선거구제를 사용했던 1994년 이전의 일본에서 동일정당의 복수공천에 따른 인물본위 선거행태와 광역 선거구 등이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조장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공통점은 정치인은 당선이라는 목적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주어진 제도적 환경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냐를 판단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당선위에 행동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제도의 변화는 언제 가능하게 될까? 제도변경은 정치적 과정이다. 정치인 사이의 권력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의 변경은 더욱 그렇다. 기존의 정치적 세력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형태의 경우를 보자. 권력의 독점이 가능한 상황이면 대통령제를 주장하게 되고 반대로 독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 차선책으로 권력의 분점이 가능한 내각제가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선거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률로서 국회에서 입법돼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의 변경이 정당체계의 변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역으로 기존 정파의 세력관계가 선거제도를 결정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마디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선거제도의 변경방향과 과정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력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절하지 못한다면 선거제도의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구조적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선거제도 변경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초 선거제도를 변경한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가 남았고 이것이 결국 선거제도변경의 성패여부를 결정했다.
구조적 요인이 선거제도 변경의 필요 조건이라면 정치적 이해관계는 충분 조건이었다. 뉴질랜드의 경우 정치인들의 반대를 뚫기 위해 국민투표방식을 사용했다.
한번은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투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92년), 또 한 번은 기존제도와 새로운 선거제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행했다(93년). 반면, 일본의 경우처럼 대다수 정치인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크게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선거제도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크게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해보다는 제도변경 안해
정치인들이 선거제도의 변경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던 94년 이전의 시도가 실패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이는 결국 정치인들이 새로운 제도 하에서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정치적 이익이 증대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선거제도의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경제와 민생회복에 중점을 두어야지 웬 생뚱맞은 정치 논쟁이냐는 비판에 비정상적 정치구도와 지역구도를 바로잡는 문제는 경제와 민생이 제대로 되기 위해 언젠가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문제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정치인들의 선의, 참 어려운 문제다.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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