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신학기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학용품과 참고서를 사던 기억이 아련하다. 20여년 전만 해도 한 학년 진급하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었다. 인천에서 40줄을 넘긴 이라면 동구 금창동 일대에 들어선 ‘헌책방 거리’를 안다. 영어사전 등 필요한 책을 값싸게 사기 위해 한번쯤 이 거리를 찾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경인전철 동인천역에서 도원역 쪽으로 10여분쯤 걸으면 왼쪽에 배다리철교가 나온다. 철교를 지나자마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헌책방 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 ‘헌책 삽니다. 팝니다’라고 내건 입간판이 보인다.
금창동 헌책방 거리의 역사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폐허가 된 거리에 리어카 책방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책방 골목’이 형성됐다. 해방 전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인천에는 귀한 외국서적들도 풍부해 전국 각지에서 온 이용객들이 줄을 이었다. 전성기였던 60년대에는 서울 청계천에 버금가는 전국에서 두번째로 큰 헌책방 거리를 형성해 ‘작은 동대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40여 개에 달하던 고서점은 그러나 80년대초부터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해 지금은 10여 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벨서점, 대창, 집현전, 창영서점, 한미서점, 삼성서점 등이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보다 바닥부터 시작해 사람 키만큼 쌓여있는 책들이 더 많다. 언뜻 보기엔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듯싶지만 책방 나름의 분류방식에 따른 것들이다. 학술서적부터 참고서, 기술서적에 법전 등 갖가지 종류의 책이 다 있다. 책값은 시중가의 절반 정도. 정가 2만7,000~3만원의 영한사전은 재고가 2만원선이고, 헌 사전은 1만원 정도에 구입할수 있다. 단행본 소설 등은 2,000~4000원, 유아용 전집류도 시중가의 40~50%에 살 수 있다. 외국서적은 신간의 60~70% 가격에 판매하고 어학ㆍ컴퓨터ㆍ음악ㆍ건강 등 각종 전문서적과 ‘조선왕조실록’ 등도 값싸게 손에 넣을 수있다.
인터넷의 확산 등으로 고객의 발길은 계속 줄어 헌책방 거리의 쇠락을 부채질하고 있지만 서점 주인들의 열정과 관심은 전혀 식지 않았다. “헌책방은 도심 속의 숲과 같아요.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살아있는 가슴입니다. 책을 찾으러 오는 가슴은 그리움을 안고 옵니다.” 73년부터 아벨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곽현숙(56)씨의 헌책방, 고서 예찬론이다.
곽씨의 정성 탓에 30평 남짓한 이 서점에는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고객 40%가 외지인이다. 민속ㆍ전통, 종교, 사회과학, 철학, 경제, 문학, 어린이책과 외국 원서 등 5만여권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곽씨는 “헌책방은 단지 책을 싸게 사는 곳이 아니라, 옛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는 문화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200여㎙ 떨어진 곳에 근대잡지와 인천의 옛모습 사진 등을 선보이는 ‘아벨전시관’도 운영하고 있다.
집현전 주인 오태운(79), 한봉인(75)씨 노부부. 평안남도가 고향인 오씨는 51년 인천으로 월남한 후 53년부터 헌책방을 운영해왔다. 평생을 책과 함께 한 이들에게는 사연도 많다. 영어 관련서적을 구하기 힘들었던 60, 70년대 학생들의 성화에 못이겨 미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전문서적부터 잡지까지 닥치는대로 구해오기도 했다. “그때는 책을 사려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고 회상하는 오씨는 “요즘에는 학생들이 책을 멀리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대창서점 주인 김춘화(70)씨는 “헌책방 거리를 찾는 사람이 점점 줄고, 책방이 하나둘 사라질 때 마음이 아프다”며 “인천시라도 직접 나서 고서점 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활성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독서광들은 변함없이 헌책방을 찾고 있다. 경기 시흥시에서 왔다는 대학원생 김모(26ㆍ여)씨는 “고전과 문학서적 등 희귀한 책을 구할수 있어 한달에 1~2번은 금창동 헌책방 거리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인구(43ㆍ인천 부평구 부평동)씨는 “같은 책이라도 손때가 묻은 헌책에서 얻는 마음의 양식은 더 소중하고 가치있다”고 말했다.
송원영 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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