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부동산 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계속 오르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시장의 흐름을 외면하는 정책을 내면 안 됩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이다. 시장은 8월말 정부의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숨을 죽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장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책이 나올 경우 그 동안 ‘학습효과’에 의해 집값이 급등할 우려가 크다고 부동산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 같은 악순환은 정부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시장의 자연스런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수많은 정책 실패 사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강남 집값이 여타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3년 5ㆍ23대책에서 올해 5ㆍ4 대책에 이르기까지 2년 여 간 판교신도시 개발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30차례 이상의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강남 집값은 계속 오르고 강북과 수도권 일부 외곽지역의 집값만 떨어졌다.
2주택 소유자들이 내년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에 부담을 느껴 강북과 외곽지역 주택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이들 지역 주택가격은 떨어지고, 중대형 공급이 부족한 강남 집값은 오히려 뛰었다.
몰려드는 강남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적어 가격 폭등을 불러온 것이다. 건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강남ㆍ서초ㆍ송파구 등 강남권 대형아파트(40평형이상)의 공급물량(일반분양 기준)은 모두 86가구에 불과하다. 올 연말까지 예정된 공급물량은 모두 100가구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10가구)이후 최저 수준이다.
강남 대체 주거지를 목표로 추진했던 판교신도시 개발도 중대형 평형 축소 공급(2ㆍ17대책) 등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최근 5개월동안 주변 지역 아파트 값만 끌어올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강남권에서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실수요가 많은데도 이를 가수요 또는 투기수요로 보고 수요 억제위주 정책에만 매달린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한 분양가 규제나 다름없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 분양 이후의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심리를 오히려 자극했다. 서민들이 살기 어려운 강남 재건축 단지에 서민을 위한 주택을 짓도록 개발이익환수제를 강행하거나 소형평형 의무비율 등의 규제를 가한 것도 시장 왜곡 현상만 심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막는다는 정부의 주된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중대형 평형을 포함한 공급대책도 신중하게 다뤄야 장기적인 부동산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소장은 “정부는 일정 지역 집값이 올랐다고 바로 불을 끄려 하기보다 3~4년 뒤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갖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거환경이 뛰어난 강남과 주변 지역에 고급 주택 수요에 걸맞는 적절한 공급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대표는 “최근 집값 상승은 저금리 기조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이 주요 원인이지만 소득의 양극화와 대형아파트 공급부족, 웰빙주택 확산 등 시장의 변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며 “강북지역을 강남에 대응하는 도시구조로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금력이 있는 실수요자들이 찾아갈 수 있는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급 주택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는 서울 공항 인근이나 청계산 인근, 강남 세곡지구를 포함한 요지의 그린벨트 등에 판교를 이을 만한 신도시 건설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가격 상승지역에서 가수요자와 실수요자를 구분해 양도세를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만하다. 가격급등지역인 강남, 판교, 용인 등지에 양도세 2중 구조를 마련, 1가구 1주택자는 세율을 인하해주자는 것이다.
다주택 소유자들은 집을 팔 수 있도록 1~2년 유예기간을 준 뒤 인상세율을 적용, 다주택자의 물량이 시중에 나오도록 유도하자는 방안이다. 소형 및 중대형 평형에 대한 정부정책의 차별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소형 평형 등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주택은 공공재 성격이 강한 만큼 정부가 개입해 저렴한 가격이나 임대 아파트로 공급하되 대형 평형의 수요 공급 기능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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