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을 지속해온 국제유가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석유 소비는 웬만한 산유국 버금가는 우리에겐 결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유가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차량 운행 10부제나 복장 간소화 등 다양한 대책이 쏟아지지만, 과학자들은 이미 석유시대의 종말을 예감하며 미래 에너지 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실제로 석유 자원은 약 50년 후면 바닥날 전망이다. 그 후에 인류가 밤에 불을 밝힐 수 있으려면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 에너지는 이산화탄소를 쏟아내며 지구의 환경을 망가뜨리고 각종 분쟁을 유발했던 석유 에너지와는 달리, 깨끗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경제 환경 에너지 등 21세기의 ‘3중 딜레마(Trilemma)’를 동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수소 에너지가 거론된다.
수소는 물을 이루는 기본 성분이면서 우주의 약 70%를 구성하고 있는 친근한 물질이다. 수소는 석유처럼 태울 경우 산소와 결합해 에너지를 생성하기도 하고, 탄소 나노튜브 사이에 넣어 전지 형태로 사용할 수도 있는 에너지원이다.
‘꿈의 에너지’로 일컬어지는 수소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순수한 수소를 추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소는 지구상에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지만, 전자를 하나만 갖는 화학구조를 갖고 있어 산소 탄소와 같은 ‘흔한 물질’과 바로 손을 잡는다. 수소가 산소와 결합하면 물(H2O)이 되고 탄소와 합치면 석유나 천연가스 등 탄화수소로 변해 자연 상에 순수한 수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우주왕복선의 연료 등에 쓰이는 수소를 뽑아내기 위해 석유나 천연가스 등에 들어있는 탄화수소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그러나 이 방법은 어차피 석유를 이용하는 한계가 있는데다 석유 생산가격의 4배 정도가 든다는 치명적 단점을 지녔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가장 흔하면서도 수소를 많이 머금고 있는 물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은 섭씨 약 1,000도 정도의 고온으로 가열한 뒤 황산 요오드 등 적절한 촉매를 첨가하면 수소와 산소로 나뉘어진다. ‘섭씨 1,000도’는 쇠를 녹일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온도로, 현재로선 원자력을 이용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원자력을 이용한 수소 1톤 생산가격이 150만원 가량 될 것으로 전망한다. 원유 가격이 배럴 당 30달러일 경우 천연가스를 이용한 수소 생산가격은 약 140만원 선이다. 때문에 유가가 배럴 당 33달러 아래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원자력 수소는 가격 경쟁력을 지니게 된다. 문제는 섭씨 1,000도의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강한 원자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목표는 2019년까지 연간 3만 톤 규모의 수소를 원자력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지난해 시작된 ‘원자력 수소 생산기술 개발 및 실증사업’에 향후 15년간 투입되는 연구비는 총 9,860억원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2020년쯤 국내 수송 에너지의 20%를 원자력 수소로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원유 8,500만 배럴(연간 약 3조원)과 맞먹는 규모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도 수소 경제시대를 위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2000년 12월 수소 생산을 위한 실험용 고온가스로 ‘HTR_10’의 가동에 들어갔으며, 미국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휘 아래 ‘2040년 중동산 석유 수입 중지’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수소 에너지 개발에 한창이다. 아울러 10개국이 모여 2020~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 중인 ‘제4세대 원자로’에도 수소 생산을 위한 원자로인 ‘초고온 가스로(VHTR)’가 포함돼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박창규 소장은 “원자력 수소의 가장 큰 장점은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도 기술만으로 에너지 자립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라며 “원자력 수소 생산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모든 교통수단을 수소 자동차로 바꾸고 전기와 냉난방 시설도 수소 연료전지로 공급하는, 미래형 신도시 건설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도움말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자력 수소 생산기술 개발 및 실증 사업단 박원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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