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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키리바시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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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키리바시의 일출

입력
2005.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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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취재수첩을 찾아본다. 다행히 남아 있다. 당시의 항공 티켓, 음식점 영수증까지 한 꾸러미 쏟아져 나와 횡재라도 한 기분이다. 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로 온 세상이 들떠있는 듯했던 그 해 9월 말, 기자는 새천년 D-100일의 지구 최초의 일출 현장을 취재하는 참으로 귀한 기회를 가졌다.

그래서 찾아간, 지구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가 키리바시였다. 그때까지는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사전 취재를 하면서 키리바시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적도와 날짜변경선이 겹쳐지는 지점에 있는 남태평양의 나라라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서 가려면 호주를 거쳐 피지까지 가서,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는 수도 타라와 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렇잖아도 좋은 컷 하나 건지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일출사진, 동행한 사진기자 한 명과 최상의 밀레니엄 일출 현장을 헌팅할 욕심으로 주민들과 함께 섬 구석구석을 누비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먼 나라가 며칠 전 한국에서 관심이 됐다. 한국 선원들이 키리바시 여성들을 상대로 성 매매를 해왔고, 현지에서는 대부분이 미성년자인 이들 여성을 가리키는 꼬레꼬레아(Korekorea)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으며, 이 때문에 키리바시는 전통적 윤리ㆍ도덕이 무너지고 한국 선원과 꼬레꼬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2세의 양육 문제 등이 사회문제화 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참담했다. 6년 전 만났던 키리바시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구 10만이 채 안되는 키리바시가 꼬레꼬레아 때문에 ‘쑥대밭’이 됐다는 보도가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수도 타라와에서도 그들은 우리의 원두막을 좀 키워놓은 것 같은 전통가옥을 해변에 짓고 산다. 하와이에서 유학할 때 한국인들을 만났다며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 실력을 보여주던 한 고교 생물교사가 “여기는 도둑도 없고, 태풍도 없어 집에 담을 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 취재수첩에 적혀있다.

물론 군대도 없고 TV도 없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남태평양의 자연에 순응하며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보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 멀지않은 한국 현대사에는 또 다른 꼬레꼬레아가 있다. 라이따이한이다. 종전 30년 후 한국사회에서 성인으로 자란 라이따이한을 배다른 형으로 둔 주인공의 사연으로 베트남전의 의미를 짚은 방현석의 빼어난 소설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는 주인공, 아니 한국인 전체를 향한 한 베트남 지식인의 이런 말이 나온다.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베트남전에 개입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게 당신들에게 책임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나. 오해하지 말게. 그건 아직 당신네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라의 축에 들지 못하기 때문일 뿐일세… 우리 베트남은 당신네 나라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책임 있는 나라로서 행동했네.”

꼬레꼬레아도 단순한 성 매매, 혹은 국제적 망신 운운할 일이라기보다는 ‘책임 있는 나라’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키리바시에 관한 사실이 또 한 가지 있다. 지구 온난화로 남태평양의 수위는 2100년까지 88㎝ 정도 상승할 것이고, 산호초로 형성된 저지대인 키리바시의 섬들은 대부분 바다 밑으로 잠겨버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미 주민 이주도 시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21세기 첫 해가 뜨는 것을 보았던 이 평화의 나라에서 지구인들은 다시는 일출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한국도 꼬레꼬레아의 책임을 씻을 길이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하종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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