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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등대마을서 첫 영화제/ 동해 작은마을에 열린 '시네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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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등대마을서 첫 영화제/ 동해 작은마을에 열린 '시네마 천국'

입력
2005.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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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액션!” “컷!”

“어? 연습한대로 안되네.” “사운드가 이상해.” “응, 다시 해야겠어.”

10일 오후 강원 강릉 주문진읍. 짙푸른 동해 바다가 바로 눈 앞에서 일렁이는 한적한 어촌 등대마을이 난데없는 영화촬영으로 온통 들썩거렸다. 비지땀을 흘리며 영화를 찍는 배우도 스태프들도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다.

이 곳 바닷가에 사는 중학생 20명과 초등학생 10명이다. 영화를 찍는 모습들이 진짜 영화인들처럼 제법 그럴듯해 보이거니와, 이들이 사용하는 디지털 캠코더, 붐마이크, 메가폰, 모니터, 묵직한 삼각대 등 장비들도 그럴싸하게 갖춰져 있다. 아이들이 만드는 영화는 이 곳에서 16일 막을 내리는 제1회 등대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낯 익은 스타들과 화려한 이벤트, 돈 들인 대작영화 따위가 있어야만 어디 영화제일까.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주문진 등대 밑 50평 가량의 공터에서 8일 개막한 등대영화제는 주문진민족문화학교와 창작영화집단 ‘창시’(대표 신지승)가 마련한, 작지만 알찬 축제. 문화학교에 몸담고 있는 시인 정토(45)씨가 변변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기획하고 주민들이 적극 후원해 이뤄졌다.

영화제 시설이라야 영화제 본부 역할을 하는 천막 하나에다, 5톤 트럭에 내건 스크린 뿐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모두들 흥이 나 있다.

영화제의 경비는 강원도와 강원문화재단이 지원한 100만원이 전부. 필요한 장비와 인건비, 숙식비 등을 모두 합하면 줄잡아도 1,000만원은 너끈히 넘지만 ‘창시’가 무료로 영화제와 영화촬영을 도와주고 마을 숙박업소, 식당에서 숙식을 지원해줘 적자를 메웠다.

정씨는 “자본이 아닌 주민이 직접 만들고 주민이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준비했다”며 “저 등대처럼 이 행사가 주민과 학생들에게 삶의 등대 역할을 하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넉넉지 않은 생계에 바쁜 주민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영화제인 만큼 상영작들도 남다르다. 재작년 창설된 ‘창시’가 그 동안 전국의 농어촌을 돌며 현지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온 단편영화들이 저녁마다 한편씩 스크린에 비춰진다. 옛날 시골마을을 돌며 노천에 스크린을 걸어놓고 동네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그 분위기 그대로다. u

또래 남자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6학년 여학생들이 4학년 남자아이를 사귀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경기 가평 율길리 초등학교의 이야기(‘어디 가는 거예요?’), 음악을 들려주는 비닐하우스의 고추가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비닐하우스에 틀어박힌 충남 공주 입동리 한 소년의 이야기(비닐하우스의 고추처럼) 등 우리 시대의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풍경들을 담아낸 영화 7편이 상영작 목록에 올라있다. 하지만 얄궂은 장맛비 때문에 야외상영이 자주 중단되는 것이 아쉽다.

영화제의 절정이자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앞서의 아이들이 만드는 30분짜리 단편 영화다. 가정불화로 방황하던 등대마을 아이들이 가출한 서울아이와 함께 노숙을 하면서 우정을 다져가는 과정을 담는다. 영화가 진행되는 것을 봐가며 수정도 해야 하기 때문에 상영이 불과 일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도 아직 제목도 정하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찍고, 연기까지 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도 단역과 엑스트라로 돕는다. 아이들은 고작 이틀간이지만 시나리오 작성과 연출, 촬영, 연기, 동시녹음에 대한 기초교육을 받았다.

그래도 영화촬영이 그리 간단할 리 없다. 붐 마이크가 연기자를 따라 움직이지 못하거나, 또는 카메라가 흔들리고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장면마다 다시 찍기를 수 십번 씩이다.

이날 오후 3시간 넘도록 그렇게 해서 건진 것은 고작 세 장면. 금새 지루해 하고, 쉽게 손을 털고 일어설만한데도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방 깔깔거린다.

하루동안 카메라 감독 역할을 맡은 이지훈(주문진중학교1)군은 “카메라를 처음 만져보니 신기하다”며 “우리가 찍은 영화를 다른 사람과 함께 볼 수 있고 영원히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좋다”고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화 제작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신지승(42) 대표는 “단순히 우정 분 아니라 등대마을 주민들의 애환까지 모두 담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13일 촬영을 마치고 이틀간 편집을 거쳐 영화제 마지막 날인 16일 오후 6시30분 공개된다. 야외 스크린을 통해 바닷가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좇으며 밤 별과 파도소리에 한번 취해보는 것은 어떨지.

주문진=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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