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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삶의 행복 일깨워준 보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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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삶의 행복 일깨워준 보따리 할머니

입력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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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끙끙거린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손에 든 짐이 꽤나 무거운 모양이었다. “그거 뭔데?” “으응!” 아내는 조기를 사왔다고 했다. 절에 가는 날이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팔러 왔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잘 샀다는 듯 스무 마리를 엮은 조기 갓을 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제사 때 나눠 쓸 것이라며 여든두 살이나 되는 할머니가 하도 안돼 보여 샀다고 했다. 조기, 새우, 멸치, 미역 등을 머리에 이고 백발의 노인이 그렇게 팔러 왔더라는 것이다. 절에 다니는 신도 몇 분이 서로 돈을 빌려가며 나누어 떨이를 시켜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가슴 한구석이 싸해 왔고, 그렇게 팔아서 남는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 했다. 시장에서는 못 주어도 조기 스무 마리에 2만5,000원은 주어야 하는 것을, 2만2,000원 불렀는데도 2,000원을 마저 깎아버리고 2만원에 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혼자서는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는 여든 두 살 할머니의 큰 보따리가 힘든 삶의 무게만큼이나 짓눌려 왔다. 사연은 잘 알 수 없지만 며느리가 집을 나가버리고 어린 손자들과 산다는 할머니, 토마토를 드렸더니 당뇨병까지 앓고 있어 냉수만 드시더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값을 다 주고 살 것이지 왜 깎았느냐고 했다. 문득 어머님 생각이 났다. 올해 여든 한 살이신 어머니는 시골에서 베를 짤 때면 여수에서 왔다는 보따리 장사 할머니에게 멸치, 새우, 미역 등을 곡식과 맞바꾸곤 했다. 서로 가난하여 못 살았던 시절, 그러나 흥정은 흥정대로, 인심은 인심대로 덤도 오가며 가슴은 더없이 훈훈했다. 물론 밥과 잠은 공짜였다.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으신 그 할머니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인정에나 다니시고, 어린 손자들의 귀여운 재롱이나 보며 사실 그런 나이가 아닌가. 아내 역시 그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래도 우리는 참 행복한 것 아니냐고 했다. 부족한 가운데도 가족들 건강하게 무탈하며 언제라도 서로 안부 전하고, 얼굴 볼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라며 나도 응수 했다.

새삼 우리 부부에게 행복을 일깨워 준 할머니였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한휴식ㆍ경기 수원시 고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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