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6월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정_김 면담으로 국면이 반전되고 이후 남북, 북미, 한미간 치열한 물밑 작업을 통해 북의 회담 복귀가 나오게 됐다.
지난해 6월26일의 3차 6자회담 이후 정_김 면담이 성사되기까지의 1년은 한미의 회담 재개 종용을 북한이 거칠게 거절하면서 한반도 위기가 점증하는 피 말리는 시련기였다. 북한은 지난해 9월말까지 4차 6자회담에 나와야 했지만 11월 미국 대선을 이유로 지난해 연말까지 회담 참가를 거부해왔다. 이어 올 1월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미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 등 4개국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언급하자 북한은 2월10일 핵 무기 보유와 6자회담 무기한 불참을 전격 선언했다.
이후 4개월 동안 북한을 끌어내려는 한국과 중국의 줄기찬 노력,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미국과 북한의 격렬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에게 자극적인 발언의 자제를 요구했고 미국은 이에 호응, 북한의 주권인정과 대북 불침공 의사를 표명했다. 한국은 특히 북한을 유인해낼 수 있는 ‘중대제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마냥 6자회담을 거부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는 상황인식을 하게 됐다.
꼬인 매듭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풀기 시작했다.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한 정 장관을 만난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6자회담을 거부한 적이 없으며 미국이 존중해주면 7월중 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핵 문제를 남북이 주도적으로 풀 것임을 시사,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3일 후 북한의 한성렬 유엔 주재 차석대사는 “미국이 폭정 발언을 철회한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이런 발언을 미국 당국자들이 하지 않으면 철회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조건을 크게 하향 조정했다. 이 시점을 전후로 우리 정부의 능동적인 역할이 시작됐다.
김 위원장에게 중대제안을 설명한 뒤 “신중히 검토해 답을 주겠다”는 말을 이끌어낸 정 장관은 같은 달 29일 미국을 방문,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등과 잇따라 만나 설득했다. 특히 체니 부통령은 정 장관과의 면담에서 “라이스장관과 만나 얘기하라”고 말해, 국무부에 권한을 위임하고 강경파가 당분간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사실상 약속했다. 이어 만난 라이스 국무장관은 정 장관의 설명에 ‘충분한 고려’(full consideration)이라는 표현으로 공감을 표했다고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정 장관 방미와 동시에 진행된 이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의 방미도 또 다른 계기였다. 당시 뉴욕에서 열린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주최 비공개 토론회에서 이 국장은 조셉 디트러니 미 국무부 대북협상대사에게 회담 날짜를 잡기 위한 북미양자 접촉을 제의했다. 미국은 이를 수용해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베이징으로 보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마지막 담판을 시도, 6자회담 재개를 확정했다.
정부 당국자는 “모양새는 우리 정부의 디자인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전의 태도로 보면 미국이 양자접촉에 응하지 않을 것인데 정 장관 등 우리측의 집요한 대북, 대미 설득이 흐름을 반전시켰다는 얘기다. 이처럼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부각된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과 북미 양자접촉 가능성은 향후 국면에서 주목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