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이이….”
서울 수유동 ‘예닮의 집’, 현이(8ㆍ가명)와 종우(8ㆍ가명)가 커다란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환히 웃고 있다. 아저씨들이 “얘들아, 아저씨들 왔다”라고 소리치며 우르르 들어가자 아이들은 질세라 품안으로 안긴다.
올해 7살 된 막내 관우(가명)부터 9살 맏형 성훈(가명)이까지, 부모로부터 버려진 남자 아이 7명과 자원봉사자 장모씨(47) 1명 등 모두 8명의 식구가 살고 있다.
SK 텔레콤 자원 봉사단 ‘나눔 사랑’(회장 신종환) 회원 45명은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이 곳에 들르는 매주 금요일 오후가 그렇게 짧을 수 없다. 봉사 활동을 근무 시간으로 인정한다는 회사측의 배려로 이들 회원은 2년째 6~7명씩 그룹별로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봐 오고 있다.
7월 1일, ‘그룹 홈’으로 맺어진 아저씨를 일주일만에 만나게 된 현이와 종우, 민수(8ㆍ가명)가 정신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쏟아 냈다. “아저씨, 나 여자 친구 생겼어요. 1학년 때 나랑 같은 반이었던 친군데 이름은 김수아(가명)에요, 히히.” 뭐가 그리 좋은지 얘기하면서도 키득거린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좋아 한다고) 말했어?” 6개월째 이곳을 방문하고 있는 박용균(35ㆍSK 텔레콤 네트워크 운용본부 운용 계획팀 대리)씨가 물으니 민수는 “아니요. 맨날 그냥 괴롭히기만 해요”라며 까르륵 웃는다. “우리 민수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박씨가 묻자 골똘히 생각하다 그는 “으음 … 가수! 동방신기처럼 춤추고 노래도 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아저씨 무릎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던 민수가 갑자기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한참 얘기를 주고받다가 아저씨는 갑자기 생각난 듯 묻는다. “얘들아 니들 숙제는 다 한 거야?”, “그럼요, 옛날에 다 했죠.” 옛날에 다 했다는 말에 아저씨들은 웃음이 난다. “그랬어? 아휴 우리 꼬맹이들, 착하기도 하지.”
아이들이 노는 사이에 ‘나눔 사랑’의 코디네이터인 유익선(35ㆍSK 텔레콤 네트워크 운용본부 운용계획팀 대리)씨는 축구하러 나간 나머지 아이들을 찾으러 학교로 나선다. 30분쯤 지나니 땀 흘리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 온다. “어? 아저씨들이다” 뛰놀고 들어오는 자기들을 반겨주는 아저씨들이 반가운 모양이다.
본사인 SK그룹의 장려책으로 생겨난 55개 자원봉사단 가운데 하나인 이 단체는 지난 2003년 12월 결성됐다. ‘나눔 사랑’이 특히 호응을 얻은 부분이 바로 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을 돌보자는 의견으로, 이내 44명을 모을 정도였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봉사자가 85명으로 늘었다.
가입 인원이 거의 두 배로 늘게 되자 지난 달부터는 봉사 대상 단체를 서울 미아동 ‘둥근나라’로 하나 더 늘렸다. 저소득층, 소년 소녀 가장, 결손 가정 아동 등이 방과후 공부방으로 쓰는 이 곳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2학년까지 남녀 학생 30여명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간부급 사원 등으로부터 들어 오는 약간의 지원금만으로는 아쉬워, 올해부터는 매달 1만원씩 거둬 봉사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얘들아, 목욕할 시간이다. 차례대로 두 명씩 들어와.” 목욕을 담당하는 박씨는 “같이 목욕을 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느낄 수 있어요. 스키쉽이 한참 필요할 때 잖아요. 보통은 공중 목욕탕에 같이 가는데 오늘은 영화를 보기로 한 터라 시간 절약을 위해 집에서 하기로 했죠”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안 열더니 3번 이상 보니까 안기기도 하고 고민도 얘기하고 살갑게 굴어요. 실컷 아이들과 놀고 집에 돌아갈 때는 발걸음이 무겁죠.”
영화를 한편보고 장 이모는 아저씨 2명과 피부과에 다니는 성훈와 종호(9ㆍ가명)?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저씨들이 윱?날에 매?병원 가는 업무를 본다. 성훈이와 종호는 아토피로 고생한 지 3개월째. 치료를 받고 일주일치 약을 타 가지고 왔다.
저녁 식사전, 마당에서는 공놀이가 벌어졌다. 아저씨 두 명에 아이들 3명이 한편. 나머지 한 명은 심판이다. 던지고 받다가 서로 티격태격 싸움도 잘 난다. 성우(8ㆍ가명)와 막내 관우가 말씨름을 하다 몸싸움으로 번지자 결국 아저씨들이 나선다.
잘잘못을 가려주고 화해시켜 주는 것도 아저씨의 몫. 몇 분동안 게임도 안 하고 씩씩거리던 둘은 10분쯤 지나자 어느새 풀어져 있다.
4개월 된 허웅(34ㆍ SK 텔레콤 네트워크 운용본부 전송운용팀 대리)씨는 “큰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달래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똘똘해서 금방 알아듣는다”며 “자주 못 오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섭섭함이 큰 것 같다“고 마음 한 켠을 슬쩍 들춰 보인다.
“잘 따르던 아이가 갑자기 아저씨 밉다고 말하는 것은 알고 보니 그 섭섭함의 표현이더라고요. 오면 일단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어요?”
‘예닮의 집’ 아빠들은 밥을 먹고, 식사 뒤처리와 청소까지 모두 마친 후에야 슬쩍 자리를 떴다. 6시간 동안 7명의 아이들과 뒹굴다 나온 그들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