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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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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입력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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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대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틀림없이 20세기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심리학의 실험을 소개한 책이다.

하지만 ‘심리학 개론’에 딱딱한 문장으로 줄줄이 나열된 실험 사례, 각 장의 말미에 빠지지 않는 심화학습 안내 등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이 책은 심리학 실험이 인간과 사회 현상의 이면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해부해서 보여주는지, 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기초 학문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점이다. 책에 등장하는 실험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미국 최고의 수필상’을 두 차례나 받은 심리학자 로렌 슬레이터의 착안과 글솜씨, 중요한 실험에 관계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녹여내는 노력이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미국 뉴욕에서 제노비스라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집 앞 도로에서 칼로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근처 아파트 사람들이 불을 켜고 쳐다보면 도망가는 식으로 6분씩 몇 차례 나누어 35분 동안 이 여성을 쫓아가며 난자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고, 무려 38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현장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녀가 절명할 때까지 아무도 경찰에 연락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사건 직후 뉴욕대의 존 달리, 컬럼비아대의 빕 라타네 교수는 제노비스 살인사건과 똑 같은 실험 조건을 고안했다. 각기 다른 방에 사람들을 한 명씩 들여보낸 후 그 중 한 명이 간질 발작을 일으켜 위기에 빠진 것처럼 가장했다. 사람들은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조건이었고, 고통과 도움을 호소하는 환자의 소리는 마이크를 통해서만 들었다. 실험은 살인사건처럼 6분 동안 지속했다.

결과는? 자신말고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믿었을 때 대략 70%의 사람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과 간질 환자 단 둘이 있다고 믿을 때는 85%가 3분 안에 조치를 취한다.

집단이 커질수록 안전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누구나 방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임감 분산’ 효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설명할 수도 있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가 기억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인지를 증명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방법만 찾는다면 프로이트의 이론대로 기억을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유아기의 원숭이가 먹이를 주는 어미보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어미에게 더 큰 모성애를 느낀다는 해리 할로의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되도록 안아주지 말고 냉정하게 키우라는 육아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은 또 얼마나 엄청난가.

거짓말을 하도록 시켜 놓고 대가로 20달러와 1달러를 주었을 20달러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 했다는 걸 인정하지만, 1달러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20달러 쪽은 돈 때문에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는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있지만, 1달러 쪽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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