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굉음이 들린다. 동물이 포효하는 듯한, 거대한 기계음 같은 묘한 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울림은 커지지만 그 실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주위를 감싼다. 소나기인가 싶어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무엇에 홀린 듯,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하던 중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비명을 지른 건 이 때문이 아니다. 분명 한 몸이었을 반대편 절벽 아래로 수량을 가늠할 수 없는 방대한 물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장마철 불어난 강물을 방류하는 댐에 선 듯한 착각이 든다.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물줄기는 물보라로 바뀌어 하늘로 솟구친다. 물보라는 다시 햇살과 만나 빙하의 크레바스 마냥 깊게 패인 협곡에 둥근 무지개를 띄웠다. 빅토리아 폭포(빅폴)의 다섯 폭포 중 첫 번째인 악마의 폭포와의 만남이다.
‘모시오아 투냐(Mosioa Tunya)’. 이과수(브라질, 아르헨티아), 나이아가라(미국, 캐나다)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알려진 빅폴의 현지 지명이다. ‘굉음을 내는 연기’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남부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에 걸쳐있는 길이 1.7㎞, 낙차 100~110m가량의 폭포이다. 규모면에서는 두 폭포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불과 50m 전방에서 폭포의 위용을 체감하는 덕에 관람객이 느끼는 감동은 훨씬 크다.
방류량도 엄청나다. 많을 때는 1초에 8,000톤 가량 쏟아낸다. 폭포의 상류는 잠베지강. 잠비아에서 시작, 짐바브웨와 모잠비크를 거쳐 인도양으로 흐른다. 2,736㎞로 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길다.
전설에 따르면 폭포를 만든 신이 폭포 뒤편 동굴 속에 숨어 산다고 전한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신성한 폭포다. 외부인으로서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다. 1855년 잠베지강을 탐험하던 중 갑작스레 빨라진 물살에 놀라 카누를 인근 섬에 급히 정박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아프리카 탐험 역사상 가장 짜릿하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폭포에 대영 제국의 수장인 여왕의 이름을 붙인 것도 아프리카 대륙을 통틀어 그가 본 최고의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친 악마의 폭포는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빅 폴 관람에 나서니 점입가경이다. 악마의 폭포와 500m 떨어진 메인 폭포에 도착했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물방울이 크레모어 파편처럼 사방으로 튀기더니 이어 물과 무지개의 현란한 향연을 연출한다. 폭포가 낙하하기 직전, 리빙스턴 일행이 대피했다는 자그마한 섬이 물보라 사이로 어렴풋이 보인다. 당시의 다급했던 상황이 절로 느껴진다.
폭포 반대편 절벽을 따라 난 산책로를 지나다 보면 원숭이, 줄무늬 망구스, 부시벅 등 예기치 못한 동물과의 조우도 기다린다.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한 바오밥나무도 기다린다. 말발굽폭포를 지나 도착한 무지개폭포에는 아예 쌍무지개가 떴다. 관광객의 탄성과 찬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마지막 폭포인 이스턴폭포를 볼 수 있는 관측지는 지명조차 위험 지역(Danger Point)이다. 세찬 물줄기로 인해 곳곳에 촉촉한 물기가 배어있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폭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한 발짝 나아갈수록 폭포의 장관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경치를 보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한없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알려주는 보여 주는 듯하다.
폭포는 이어지지만 더 이상 관람을 할 수 없다. 이 곳에서 짐바브웨 국경이 끝난다. 건너편은 잠비아 땅이다. 국경을 넘으려면 리빙스턴 다리를 지나야 한다. 1905년 건설된 이 다리는 거대한 협곡에 막혀 아프리카 대륙 횡단을 포기해야 했던 리빙스턴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검문소를 지나 잠비아에 서면 빅토리아폭포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잠비아인들은 영국의 여왕보다는 리빙스턴의 모험과 탐험 정신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모양이다. 이 곳에서는 폭포의 이름도 빅토리아가 아니라, 리빙스턴폭포가 바뀐다. 길이는 짧지만 낙차폭이 커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붙은 별명도 ‘지상 최고의 폭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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