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친구들이 이 책을 통해 주위 사람들과 더욱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했으면 좋겠어요.”
입시 준비로 바쁠 고3 여고생이 뇌성마비 청소년의 언어 재활을 돕는 책을 번역해 자비로 냈다. 서울 노원구 영신여고 3학년 이주희(18)양은 최근 1년 동안 틈틈이 미국 재활의학자 버니스 러더퍼드가 쓴 ‘Give them a chance to talk(그들에게 말할 기회를)’를 한글로 옮겨 ‘우리도 말을 잘 할 수 있어요’(목양사 발행ㆍ값 8,000원ㆍ전화 02_763_9629)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책은 일단 치료를 돕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에게 무료로 나눠 줄 계획이다. 주희양이 뇌성마비 친구들에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오빠 지형(20ㆍ미국 프린스턴대 유학 중)군의 영향이 컸다. 2003년 고3이던 오빠는 같은 학년 뇌성마비 친구에게 1년 반 동안 무료로 공부를 도와줬다. 하지만 대입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주희양도 뇌성마비 친구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작년 1학기부터 서울 중계뇌성마비복지회관에 나가 또래 뇌성마비 친구의 언어 재활 치료를 거들었다. 컴퓨터 앞에 함께 앉아 “아, 어, 우” 발성을 같이 하고 자세 교정 등을 도왔다. 당시 이대목동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이던 이모 이청기 교수로부터 미리 언어 재활 치료 훈련까지 받았지만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아 6개월여 만에 그만둬야 했다.
낙심한 주희양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모한테서 ‘뇌성마비 언어 훈련을 위한 국내 서적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책이 정해지자 학기 중에는 짬이 날 때마다, 지난 겨울방학 때는 하루 2~3시간씩 매달렸다. 어려운 의학용어가 나오면 이모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풀어나갔다. 발간 비용은 어릴 때부터 모아 온 용돈 400만원을 모두 투자했고 모자라는 부분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주희양은 6일 “지난 주 책을 처음 받아 보았을 때 이모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고 말했다. 책 선정부터 번역, 감수까지 큰 힘이 되어 준 이모 이청기 교수가 올 4월 아까운 나이(45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동순(47)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주희가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한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며 “항상 불우한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희양의 장래 희망은 방송 프로듀서. “드라마나 뉴스에서는 대개 장애인들을 불쌍하게 다루지만 저는 그들이 얼마나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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