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필자만 독립기념일 행사가 지겹고 믿을 수 없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다른 수천만 미국 시민도 그렇게 여길 것이다. 매년 독립기념일에 펼쳐지는 호화로운 구경거리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애국적인 공휴일이 되풀이되면서 변함없이 이어져 온 미국 언론의 주제가 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진정으로 신뢰하고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7월4일만 되면 독립을 위해 불굴의 정신으로 싸운 사람들을 칭송하기에 바쁘다.
미국 독립혁명에 기여한 ‘이름난 분들’이 영국의 독재군주 조지3세에 맞서 용감하게, 그리고 탁월한 웅변실력으로 민중을 이끌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오늘날 언론 매체가 불행한 과거도 있었다는 사실을 외면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집필한 세기의 천재 토머스 제퍼슨을 보라. 선언문은 자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자명의 진리로 확신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그렇지는 않았다.
제퍼슨 스스로가 양심과 도덕에 비추어 고민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죽을 때까지 노예 소유주였다. 여성이 투표권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성이 정치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면 이마에 주름이 생긴다”는 것이 이유였다.
열렬한 애국 지도자로 알려진 몇몇도 사실 탐욕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당대 최고의 갑부였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산은 푼돈에 불과할 정도다. 워싱턴은 엄청난 땅투기를 해댔다. ‘미국 민중의 역사’의 저자 하워드 진은 “워싱턴은 독립혁명 이후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이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설적인 혁명가 패트릭 헨리 역시 땅을 얻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치던 그였지만 인디언에게는 예외였다. 그의 슬로건은 실은 “나에게는 땅을, 그들(인디언)에게는 죽음을”이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건국의 아버지가 대농장의 소유주였다. 그들은 미국 헌법에 노예제를 명문화해 놓았다.
이 낡고 부당한 역사가 오늘날 다 까발려졌을까? 그렇지 않다. 추악한 과거를 모른 척하는 나쁜 버릇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언론은 외양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면에 감춰진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1776년으로 돌아가 보자. 자유에 대한 온갖 화려한 수사도 흑인노예와 여성, 원주민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그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역사가 아닌 동화를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 초대 헌법이 탄생한 지 200년이 지난 87년, 대법관 서굿 마셜은 헌법을 만든 위인에 대한 맹목적 숭배에 일침을 가했다. “그들이 고안한 정부는 시작부터 많은 결함을 안고 있었다.
남북전쟁과 중대한 사회 변화를 비롯해 우리가 오늘날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수정이 있어야 한다.” 정치학자 마이클 파렌티는 저서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에서 “대표들은 몇 주 동안이나 관심사에 대해 토론했지만 새 헌법에다 자신들의 특혜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데 골몰했을 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200년이 지난 후에나 건국 아버지들에 대한 왜곡된 신화가 한 꺼풀 벗겨질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쯤 현재 지도자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노먼 솔로몬 미국 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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