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이 정부의 차관급으로 발탁된 인사가 전해준 이야기 한 토막. “임명장을 받는 날 노무현 대통령과 잠시 다과를 나눴는데 솔직히 그의 열정과 소명의식에 진한 감동이 느껴집디다. 대강 ‘나나 당신이나 더 이상 무슨 영화를 누릴 일이 있겠소. 사사로운 이익이나 감정은 다 접고 한번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봅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자리에 서있는 이유가 아니겠소’라는 요지였는데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정말 내 한 몸 던져 의식과 제도가 선진화된 일류국가를 만들어봐야겠다는 각오가 들더군요.”
그가 지금도 그런 각오와 열정으로 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국가 혁신에 대한 노 대통령의 소명의식은 갈수록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런 만큼 취임 초 “다 깽판쳐도 남북문제만 잘하면 된다”“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결국은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는 발언에서부터 최근 “전 세계 부동산값이 다 올라도 한국만은 올라선 안된다”“가장 나쁜 뉴스는 대학별로 논술을 본고사처럼 출제하겠다는 것”이라는 말에 이르는 그의 자극적 표현도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이 큰 데서 생기는 좌절감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요즘 집중적으로 비판되는 노 대통령의 잦은 말바꾸기와 편의주의적 언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임총리제 등 분권형 국정운영을 강조하면서도 국회의 해임건의 권한엔 불만을 토로하고, 시스템인사를 강조하면서도 그 어떤 시스템도 지역구도 타파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뛰어넘을 순 없다고 강변하고, 당정분리를 주장해놓고는 당에 대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경제회생에 올인한다고 하더니 경제가 잘되려면 정치부터 고쳐야한다고 되돌아간 것 등은 보통 사람으로선 참으로 따라가기 힘든 논리 전개다.
이런 지적에 휩싸인 노 대통령이 반길만한 어구도 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그는 어느날 X라고 말했다가 다음날 X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는 그가 매번 자신이 말하는 것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항상 그가 신념에 가득찬 모습으로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어떤 것을 다시 가공해 다른 각도로 돌려놓는 기막힌 재주가 있다.”애플의 중흥을 이끈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다룬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그를 노 대통령으로 치환하면 그의 다면성을 이해하는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이젠 국가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하는 시대라고 하니, 실적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유연하고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 같은 CEO의 역할모델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국가지도자의 언행은 기업경영자와 차원이 달라야 한다. 형평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잘 가려야지, 그저 떼쓰듯 밀어붙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참여를 표방하는 이 정부에서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여전히 제왕적 권위를 발휘하는 예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정부가 대주주인 한 금융기관의 여섯 문장 짜리 보도자료에 ‘혁신’이란 용어가 10번 이상 등장할 만큼 관제(官製) 혁신 나팔수를 양산한 일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국토 균형발전과 부동산투기 억제라는 이질적 목표를 한꺼번에 내놓아 관리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시장실패를 자초한 일,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 방침을 나쁜 뉴스로 꼽자 돌연 당정이 ‘초동진압’운운하며 박살을 내겠다는 듯이 덤비는 일 등은 정책의 혼선이나 아마추어리즘으로 설명될 사안이 아니다. 특히 대통령의 언행이 일관성을 잃거나 적개심을 품게되면 정책의 합리성은 설 자리가 없다.
요즘 시중엔 노 대통령의 다중적 품성이 변호사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우스개가 나돈다. 변호하는 대상에 따라 논리를 180도 뒤바꿀 수 있는 게 변호사다. “또 풍선껌 같은 얘기를 한다”고 흘려버려도 좋지만, 대통령 노무현과 변호사 노무현이 양립할 수는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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