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맥주를 처음 보았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온 가족이 경포대로 ‘해목’을 가서였다. 그때는 피서도 물놀이도 아니었다. 일년에 한번 바닷물에 몸을 푹 담그고 오는 것이 좋다고 하여 온 가족이 업고 걷고 하여 20리 냇길을 따라 어느 하루 바다에 다녀왔던 것이다.
그리고 바닷물에 담근 몸을 씻지 않고 돌아와 다음날 다시 대관령 아래 약수터로 점심을 싸들고 가 몸을 씻고 돌아왔다. 매년 그렇게 해목과 약목을 해야 몸에 땀띠나 다른 피부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 해 여름 바다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맥주를 마시는 외국인을 보았다. 우리가 바닷가에 참외와 수박을 파묻어 놓았다가 잘라 먹듯 그 외국인들도 맥주가 든 깡통을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파묻어 놓았다가 꺼내 마셨다.
나는 그게 맥주인지도 몰랐다. 저 병에 든 것은 대체 무슨 물이길래 바닷물에 담가놓았는데도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 넘칠까 하는 생각만 했다. 코가 크고 몸에 털이 숭숭 난 외국 사람도 처음 보았고, 맥주도 처음 보았다. 어린 날 보았던 그 신기한 광경이 눈에 사로잡혀 지금도 나는 맥주 하면 양주보다 더 외국 술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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