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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인 디스 월드

입력
200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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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인구 100만의 이 국경도시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100만 명이 떠돌고 있다. 잇따른 전쟁의 참화로 조국에 돌아갈 수도, 난민촌에 뿌리내릴 수도 없는 이들의 유일한 삶의 비상구는 밀입국, 머나먼 ‘꿈의 나라’ 영국과 미국으로 잠입하는 것이다.

벽돌공장에서 하루 1달러도 채 받지 못하면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12세 소년가장 자말도 더 나은 내일과 더 좋은 세상을 그리며 탈출을 꿈꾼다.

그가 영국으로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나는 사촌형 에나야트의 통역을 맡겠다고 자청한 것도 고달픈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바람에서다.

그러나 희망을 찾아 나선 둘의 여정은 냉혹하기 그지없는 세상을 몸으로 더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런던까지 6,400㎞, 황량한 모래바람이 부는 기나긴 여행 길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한푼이라도 더 뺏어내려는 전문밀매업자와 뇌물을 바라는 관료 그리고 악덕업주와 인신매매단이다.

‘인 디스 월드’는 로드 무비다. 그러나 이 ‘길 위의 이야기’에는 낭만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지 않다. 대신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고통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녹아있다. 세상 어디에서도 반기지 않고 희망조차 찾기 힘든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다큐멘터리처럼 들고 찍은 카메라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묵묵히 두 사람의 고달픈 역정을 바라본다. 에나야트가 컨테이너 안에서 끝내 눈을 감고, 죽은 부모 품에서 아기가 칭얼거리며 들려 나오는 장면에서도 감독의 시선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단지 화면 속 진실을 현실의 아픔으로 느껴보라고 관객들에게 권할 뿐이다.

영화는 슬픔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슬프다.

천신만고 끝에 런던에 도착한 자말이 무심한 표정으로 “에나야트는 더 이상 ‘이 세상에’(In This World) 없다”고 파키스탄에 남은 삼촌에게 전화하는 모습과 사원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쉴새 없이 기도하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가지만 돌아서면 지워지지 않을 화인(火印)을 남긴다.

2003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포함해 3개의 상을 받았다. 영국 영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거장으로 인정 받는 마이클 윈터보텀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실제 아프가니스탄 난민인 자말 우딘 토라비와 에나야툴라 자무딘이 열연했다. 8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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