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는 민족과 종교문제가 얽힌 국제 분쟁 지역이다.
세르비아인에게 코소보는 민족의 발상지이자 성지다. 이들은 12세기 세르비아 왕국과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를 이곳에 세웠다.
그러나 14세기 이슬람교도인 오스만 투르크가 세르비아 왕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이슬람교도인 알바니아인이 이주해 다수파가 된다. 현재 180만 인구 가운데 알바니아계는 90% 이상이다.
세르비아는 이후 저항을 계속한 끝에 1912년 발칸전쟁을 계기로 지배권을 다시 확보했다. 2차 대전후 유고연방 체제에서 잠잠하던 갈등은 89년 연방이 해체되면서 다시 불거진다.
89년 세르비아 출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연방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빼앗자, 알바니아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코소보는 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98년 세르비아 민병대와 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KLA)이 충돌하자 세르비아군은 KLA 소탕전에 나섰다. 그러자 나토는 78일간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세르비아군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이후 나토와 밀로셰비치 사이에 평화안이 합의돼 코소보 임시행정기구가 발족하고 국제 평화유지군이 진주했다.
2001년 세르비아계 주민까지 참여한 선거에서 온건파인 코소보 민주동맹이 승리, 이브라힘 루고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올해 말에는 코소보 미래에 대한 세계회의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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