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는 민족과 종교가 얽힌 국제 분쟁 지역이다.
12세기 세르비아 왕국(그리스 정교)과 오스만 투르크(이슬람) 사이의 대전투가 오스만 투르크의 승리로 끝난 뒤 알바니아인들이 대거 이주해왔다. 세르비아는 민족 발상지인 코소보를 되찾기 위해 저항했고 1912년 발칸 전쟁 후 코소보 지배권을 다시 얻는다.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내전에 들어가면서 89년 세르비아 출신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연방 대통령은 코소보의 자치권을 빼앗았다. 이에 맞서 알바니아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코소보는 또 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98년 세르비아 민병대와 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KLA)이 충돌하자 세르비아군이 개입, KLA 소탕전에 나섰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코소보의 인권 침해를 막는다며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세르비아군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90여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78일의 공습 끝에 나토와 밀로셰비치 대통령 사이에 평화안이 합의돼 코소보 임시행정기구가 발족하고 국제 평화유지군이 진주했다. 2001년 세르비아계 주민까지 참여한 선거에서 온건파인 코소보 민주동맹이 승리, 2002년 이브라힘 루고바가 대통령에 뽑혔다.
올해 말 예정된 코소보의 미래에 대한 세계회의가 예정돼 있다. 코소보의 인구는 180만 명이고 알바니아계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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