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란의 팔레비 독재왕정을 무너뜨린 회교혁명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몰이성적이다. 혁명이후 26년 연륜이 쌓인 이란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도 이념적 편견이다. 이런 사리를 일깨우는 이유는 이란 대선에서 승리한 아흐마디네자드에 대한 서구의 비방선전이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왜곡, 이란의 변화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흐마디네자드 비방은 선거 공정성 시비로 시작됐다. 보수 회교지도부가 선거개입을 일삼았고, 아흐마디네자드는 민중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지도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비방은 그가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사실을 넘어서지 못한다. 또 이란과 친한 러시아 중국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등이 선거결과를 수용하면서 부정선거 시비는 이내 잦아 들었다.
회교혁명 정통성 인식해야
정통성 논란에 이어 아흐마디네자드가 회교혁명 당시 미 대사관 점거사건의 주범이고, 인질 학대를 주도했다는 미국 언론의 폭로가 뒤따랐다. 이에 미국 사회가 격앙했고 부시 대통령이 CIA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는 보도는 구색처럼 덧붙인 반론을 쉽게 억누른다.
그러나 혁명의 학생 지도자였던 아흐마디네자드가 대사관 점거를 주도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걸 새삼 부각시켜 ‘주범’ 운운하는 것은 이란을 테러지원국가로 분류해 봉쇄와 압박을 계속하는 당위성을 확인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국제사회에 부정적 인식을 심으려는 선전공작의 흔적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런 비방선전은 회교혁명의 역사적 맥락에 비춰 파렴치하기까지 하다. 회교혁명의 주된 동인은 1950년대 초 민족주의적인 모사데그 민주정권을 미국이 CIA 공작을 통한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세운 팔레비 독재왕정이 이란 민중의 이익을 외면한 것이다.
미국과 서구는 모사데그의 석유자원 국유화를 저지, 석유이권과 부를 독재 왕정과 나눠 가졌다. 회교혁명은 그렇게 짓밟힌 민중의 의지와 사회적 정의, 민족적 자존을 되찾으려는 민중 혁명이었다.
그리고 미 대사관 점거는 혁명과 주권에 대한 불간섭 다짐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미국이 결국 이를 수용하는 굴욕적 타협을 감수한 역사를 잊은 양, 아흐마디네자드를 테러집단의 수괴처럼 부각시키는 것은 세월과 망각에 기댄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이란의 강경보수파 집권은 이 지역의 민주확산 추세와 멀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도 황당하다. 미국이 점령한 이라크는 제쳐두더라도, 사우디 쿠웨이트 등 친미 회교국가 대부분이 독재 왕정인 이 지역 민주주의가 이란보다 앞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습다.
특히 이들 독재 왕조와 미국이 무엇보다 경계하는 것이 민중의 열망과 회교 원리가 결합한 대중정치의 확산이란 사실을 상기하면 황당무계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비방전선 눈먼 추종은 잘못
아흐마디네자드 비방, 이란 때리기의 깊은 속내를 이런 맥락에서 헤아리는 시각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그의 집권을 대중정치의 확산으로 인식, 그 의미를 흐리기 위해 비방선전에 몰두한다는 풀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아흐마디네자드 집권은 세월과 함께 쇠퇴한 혁명이념을 되살려 체제개혁과 국민통합을 이루려는 회교지도부와 민중의 의지가 낳은 것이다.
미국과의 적대 속에 대내외적 온건노선을 좇는 사이, 지배계층의 부패와 빈부격차가 커지고 민중의 소외가 깊어진 현실을 개혁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혁을 절박한 과제로 만든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핵개발을 둘러싼 위협이다.
이렇게 볼 때, 이란 대선의 의미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노력에 앞서 이란체제의 정통성을 헐뜯는 비방선전에 먼저 이끌리는 것은 어리석다. 특히 우리가 이란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교역상대국이란 사실은 석유자원을 중심으로 전략적 경제적 이익을 다투는 국제적 논란을 객관적 안목으로 보는 자세를 한층 절실하게 한다.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