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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 유럽연합(EU)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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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 유럽연합(EU)의 위기

입력
2005.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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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랑스와 네델란드가 유럽연합(EU) 헌법 비준 국민투표에서 비준 반대를 표명했다. 지난 주, 브뤼셀에서 만난 EU 지도자들은 EU 예산 문제 합의에 실패했다. 유럽 통합 계획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일반 대중은 유럽 정상들의 회담에서 ‘합의’에 실패한 것은 프랑스와 영국의 반대 때문이라는 간략한 설명을 들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유럽 국가들 간의 갈등과 긴장이 없던 게 아니었지만 그들은 왜 합의할 수 있었는가? 왜 지금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가?

문제의 본질은 각국 내의 경제 문제 때문이지 EU라는 지역기구 내의 제도적 문제는 아니다. EU의 최근 위기는 수년간 누적된 각 회원국 내의 경제ㆍ사회 문제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해야 이해할 수 있다. 즉 유럽 지도자들의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회원국 내부 사정 때문이다. 그들은 국내의 은행, 다국적 기업과 관료들을 설득해 협력을 얻으려고 노력해 왔으나 쉽지 않았다.

기실 생각해 보면 유럽 통합의 설계자들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감소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했으나 그 자체를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마치 영국 왕실의 오랜 전통인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는 많은 공무원들이 각종의 형식과 절차를 준수해야 함을 의미하고, 이것은 이미 입안되거나 합의된 결정들이 시행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림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결정은 시행된 그 때부터 문제가 파생된다. 예를 들면 기존에는 덴마크와 아일랜드가 다시 EU 관련 조약의 비준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얼마 지나 다시 투표를 할 것이고, 국민들이 투표에 지쳐 결국은 반대 의사를 포기할 때까지 투표를 강행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덴마크와 영국에서는 유럽 헌법 비준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 시행을 취소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는 국민투표를 다시 시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사실상 재투표는 어렵다. 지금 재투표를 한다면 명백한 ‘비준 거부’가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럽 헌법 비준에 반대한 것은 따지고 보면 국내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프랑스 국민들의 ‘비준 반대’는 신자유주의를 법적으로 공인한 유럽 헌법에 대한 반대일 뿐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단순한 형식적 장치로 전락시키고 매사를 ‘효율성’으로 결정하는 관료들의 지배에 대한 반대의사이기도 한 것이다.

EU의 핵심 세력들은 수십 년 간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유럽인들에게 강요해 왔고, 유럽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각국의 사회안전망을 붕괴시켰다. EU 회원국 국민들은 유럽 통합을 위해 사회복지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들어 왔다.

그들의 인내는 무너졌고, 유럽 통합이라는 것이 지난 세기에 이루어 왔던 업적들을 역으로 파괴시키는 것이라면 통합은 사양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EU의 기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다. 각국 지도자들은 국내에서의 지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에게 어필할 무엇인가를 해야 할 처지다.

레닌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위기는 혁명의 전조이다. 물론 지금 서유럽에서 혁명 운운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유럽 엘리트들에게는 진짜 힘든 시기가, 근본적인 도전이 막 시작된 것이다.

보리스 카가를리츠키 러시아 세계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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