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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의 밤/ 2005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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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의 밤/ 2005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

입력
2005.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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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은 그야말로 모든 문인들이 한바탕 흥겹게 어우러진 잔치 마당이었다.

30일 저녁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는 세대와 장르, 출신배경 따위가 모두 의미를 잃었다. 오랫동안 한국문단을 키워온 원로 문인들은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자분자분 정을 나누었고, 한국문학의 오늘을 이끌고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진 소장 작가들은 너나없이 흥에 취해 떠들썩하게 분위기를 달구었다.

○…행사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문인은 소설가 김승옥씨였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는 행사 시작 시각인 오후 7시보다 한시간이나 앞서 부인과 함께 입장해 자리를 잡았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시종 조용한 미소를 잃지 않는 그에게 동년배 문인들은 물론, ‘무진기행’ 등을 통해 그로부터 혁명적 감수성의 세례를 받았던 후학들이 줄줄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단편 ‘생명연습’으로 1962년 스물 한살 나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승옥씨는 이날 다시 ‘문청(文靑.문학청년)으로 되돌아 갔다. 소설가 이청준씨는 그를 두고 “아무래도 이 자리에 오면, 승옥이가 꼭 와 있을 것 같았다. 승옥이와 내가 막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60년대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살짝 눈물을 비쳤다.

○…CBS FM ‘김갑수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진해하고 있는 시인 김갑수씨의 사회로 3시간에 걸쳐 진행된 행사에서 ‘성탄제’라는 시로 잘 알려진 김종길 선생은 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신이 손수 뽑은 시인 이근배(65)씨의 인사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근배 시인은 “문학적 영감이 넘치게 해준 한국일보가 다시 문학에 대해 희망과 용기를 준데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진행자의 갑작스런 호명으로 단상에 오른 소설가 박완서씨는 소녀처럼 수줍어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간신히 근황만을 전하고는 얼른 자리로 돌아가 동료들과 어울렸다. 함께 자리한 시인 김남조씨는 “정말 편안한 자리여서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다”고 즐거워했다. 이들은 한 테이블에서 소설가 오정희, 시인 신달자.노향림씨 등과 함께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며 행사장을 지켰다. 이들 외에도 시인 김광규.황금찬.고은, 소설가 조정래, 평론가 유종호.백낙청씨 등 한국문단의 거목들이 거의 대부분 참석해 행사에 중량감을 한껏 더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이날 참여한 문인들의 숫자에 놀라워 했다. 김광규 시인은 “얼추 200명은 넘게 온 것 같은데 지금껏 문인들이 이렇게 많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처음 본다”며 “정말 잘 한 행사다. 역시 한국일보의 문학적 전통과 무게를 무시할 수 없다”고 평했다. 평론가 정과리씨는 “정말 이런 일은 있기 힘들다. 놀랐다”고 했다. 젊은 소설가 이명랑씨도 “원로 선생님들을 이렇게 많이 한 자리에서 뵌 건 처음”이라며 “문학이 작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문학인들을 이렇게 소중히 여겨주시는 이 자리가 정말 즐겁다”고 기꺼워 했다. 저녁에 불가피한 다른 일정이 겹쳤다는 소설가 최윤씨는 일찌감치 찾아와 방명록에 가장 먼저 이름을 남기는 정성을 보였다.

○…원로 대가들이 진중하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중견 소장 문인들은 그들다운 활력과 흥을 마음껏 드러냈다. 전주부터 서울까지의 먼 길을 밟아 부랴부랴 뒤늦게 도착한 소설가 공선옥씨는 곧바로 예의 걸쭉한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 잡았고 구효서씨는 기타 반주에 맞춰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과시해 환호를 받았다.

취흥에 젖은 시인 이윤학씨는 좌중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다가도 백낙청 서울대 교수를 보자마자 대뜸 맥주를 따라올리며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고 한국일보에 ‘길 위의 이야기’를 연재하는 소설가 이순원씨도 ‘주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2004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김경욱 작가와 올해 ‘미실’로 세계일보 문학상을 탄 김별아, 시인 정끝별 강정 소설가 고은주 등 곳곳에서 젊은 문인들끼리 유쾌하게 의기투합했다.

○…밤 10시가 되면서 행사는 마무리됐지만 ‘문학인의 밤’은 장소를 옮겨 이어졌다. 시인 김정환, 소설가 공선옥, 평론가 방민호씨 등 수십 명의 혈기왕성한 젊은 문인들은 한국일보사 인근의 인사동과 청진동 골목을 누비며 행사장에서 미처 다 발산하지 못한 문학과 삶에 대한 열정을 새벽까지 술과 노래에 담아 풀어냈다. 이날 밤 중학동 14번지 한국일보사 주변은 그대로 한국 문단이었다. 시인 신달자씨는 “이처럼 멋진 자리를 마련한 한국일보가 건강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염원을 가슴에 묻고 간다”고 말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

■ 기고/ 유쾌한 통음의 밤

몇 년 만에 밤을 새워 통음(痛飮)을 했다. 통음이란 말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1970년대 문단 일각에서나 쓰이던 사어(死語)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문학이 목숨 걸고 할 만한 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요즘은 시를 쓰는 사람이건,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술 마시는 사람이 드물고 담배 피우는 사람도 많지 않다. 통음이 가능했던 건 한국일보에서 글 쓰는 사람들을 초대해 잔칫상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문인들에게 “받기 만한 정을 조금이라도 되 갚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한다. 타이틀이 ‘문학인의 밤’이다. 문학인의 밤이라니, 그 순정한 발상이 고졸한데 여간 아름답고 고마운 게 아니다.

한국일보사 13층에 마련된 행사장에 가니, 한국문단의 대표 선수들은 거진 다 모였다. 박완서 선생도 보이고, 이호철 선생도 보이고, 고은 선생, 백낙청 선생도 보인다. 문단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오정희 선생도 춘천에서 오셨다. 1960년대 벽두에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감수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김승옥 선생이 와병중임에도 거동을 한 것이 백미라면 백미였다. 거기에 수줍은 표정의 신인들까지, 문단의 왼편 오른편, 위편 아래편이 한자리에 섞여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문인들의 표정은 기껍기 그지없다. 어쨌거나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는다는 건, 알아주지 않는 것을 드러내놓고 섭섭해 하는 투정 많은 문학인들에게는 기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간의 사정을 생각해보자. 문학은 실생활의 지표에서는 언제나 제로섬일수 밖에 없으니 어디 가서 문학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고 민망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문학은 시방 서러운 박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문학이야말로 유사 이래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모든 문화의 바탕을 만드는 근음(根音)이며 주춧돌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 예전의 한국일보는 문학인들에게 더한 것을 따로 찾을 수 없는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문학면의 퀄리티는 단연 돋보여 타지의 추종을 불허했다. 1면에 문학작품을 수록하기도 하고, 하수상한 시절이 기피하는 불온한 소설을 장기간 연재하기도 했다. 그건 한국일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배짱이었고, 미덕이었고, 그것 자체가 한국일보의 근성이랄 수 있었다.

1차를 마치고 한국일보사 인근 인사동으로 이어진 2차, 또 청진동으로 이어진 3차까지, 문인들은 간만에 허심탄회한 소회를 나눴다. 술잔을 부딪치며 오늘날 문학이 처한 참담한 형편을 고민하고 염려했다. 김정환 선생은 맥주와 소주를 혼합한 특유의 칵테일을 돌렸다. 왁자지껄하게, 아니 방자하게 춤도 추었고 노래도 불렀다. ‘성스러운 방탕의 양식’으로 문학의 신명을, 부흥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이런 자리를 가능하게 해준 한국일보의 정성을 깊이 새기는 듯했다. 한국일보 기자는 문인들과 어깨를 겯고 끝까지 함께 했다.

하룻밤 술자리였다 해도 주최 측으로선 쉽지 않은 실천이었을 텐데, 충분히 그 노고에 값할 만큼 즐겁고 유쾌한 자리였다. 왜냐하면 문인들은 기울어지는 굽은 등을 든든하게 떠받치는 듬직한 아군을 그날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잘 될 거야, 라고 누군가 취중에 말했던 것을 함부로 확신하는 소이연이 여기에 있다.

김도언 소설가

■ 참석 문인들

▦ 시인

강정 강형철 고영 고형렬 곽효환 김경미 김경수 김광규 김광림 김근 김기택 김남조 김상미 김애란 김영승 김요일 김유진 김일영 김정환 김종길 김종해 김차복 김채옥 김후란 나희덕 노향림 문효치 박상순 박철 박형준 박후기 성미정 손현숙 신달자 신동옥 신미균 신현림 신호현 안현미 여운 유안진 윤행원 이가림 이근배 이문재 이성남 이성부 이시영 이윤학 이장욱 이재철 임동윤 손택수 장대송 정구용 정병근 정끝별 조정 차창룡 고은 조영서 하종오 하정임 한미영 한택수 황금찬 황인숙

▦ 소설가

고은주 공선옥 권지예 구효서 김경욱 김도언 김별아 김용성 김완수 김일주 김정례 김지우 김혜진 김훈 박정애 방현석 백가흠 송욱영 이순원 정찬 조정래 최윤 김승옥 박상우 박완서 신경숙 안정효 오수연 오정희 우선덕 유정룡 이명랑 이승우 이신조 이응준 이청준 이평재 이호철 정길연 정미경 정영문 조용호 채희윤 최일남 한차현 함정임 현기영 황충상

▦ 평론가

김동식 김주연 방민호 백낙청 서영채 정과리 유종호 김치수 홍정선

▦ 아동문학가

김병규 박소명

▦ 문단 관계자

김영일 박춘득 신순경 김정서 고시춘 오은영 유설화 유선웅 이승환 정천기 김완 김임숙 정우영 청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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