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행복합니다. 나를 모욕한 사람들이 처벌받기를 원합니다. 대법원은 정의가 살아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28일 파키스탄 대법원이 당연한 판결을 내리자 무크타르 마이(33)씨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이렇게 짧게 답했다. 잠시 미소가 떠올랐지만 표정은 다시 착잡해졌다. 무엇이 행복하다는 것일까?
마이씨의 기구한 스토리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펀자브주(州) 미르왈라에서 남동생을 대신해 집단 강간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부족회의에서 남동생(당시 13세)이 신분이 높은 집 딸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엉뚱하게 누나에게 대신 책임을 지운 것이다. 남성 4명에게 차마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모욕을 당했고 찢어진 옷을 걸친 채 조롱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진범은 남동생이 아니라 부족회의 배심원 중 한 명이었다.
파키스탄에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자살하는 것이 거의 관례 수준이다. 파키스탄인권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2002년의 경우 전체 강간 사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집단 성폭행이었고 대부분의 피해 여성은 “수치심을 못 이겨”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마이씨는 끔찍한 기억을 딛고 일어섰다. 그 해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힘겨운 법정 투쟁 끝에 1심에서 관련자 6명에 대한 사형 선고를 받아냈다. 이 사건은 남성 우위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남성을 모욕하는 온갖 악습에 시달리는 파키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여러 나라 신문과 방송들이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마이씨는 이후 여권운동가로 변신했다. 그의 투쟁에 감동받은 국제사회는 거액의 기부금을 보냈고, 그는 이 돈으로 자신과 아버지의 이름을 딴 학교 2개를 마을에 세웠다. 교육을 통해 똑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자기한테 못된 짓을 한 남성들의 자식도 학생으로 받았다.
그러나 지난 3월 펀자브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6명중 5명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석방하고 나머지 1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것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판결에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그는 3개월 후 상고했다.
그 결실이 “석방된 혐의자들을 다시 구속하고, 무기로 감형된 자를 비롯해 전체 사건 관련자 14명에 대한 재판을 새로 시작한다”는 28일 대법원 판결이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부족끼리 여성을 맞바꾸거나 “딸이 부정을 저질렀다”며 아버지가 잠든 아내와 딸을 살해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파키스탄에 정의가 살아 있는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주목된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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