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8년 KAL여객기 괌 추락,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대형 재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참사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의 드라마로 소개되곤 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사고 후유증으로 생존자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과 그로 인해 망가진 삶은, 간혹 언론에 ‘OO사고 O주년’이란 간판을 달고 ‘후일담’ 형식으로 스쳐 지나듯 다뤄질 뿐, 고스란히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MBC 스페셜’이 3일부터 3주간 방송하는 테마기획 ‘생존’(연출 홍상운)은 1년 여 밀착 취재를 통해 인재(人災) 자연재해 전쟁 등 각종 재난에서 살아난 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꼼꼼히 기록하고 구체적인 원인을 찾아 극복 방안을 제시한다.
1부 ‘기적의 생존자들, 그 후’(3일 밤 11시30분)에서 소개하는 생존자들의 고통은 실로 처참하다. KAL여객기 괌 추락사고 생존자 유정례씨는 집안의 문이란 문을 모두 열어둔 채 낮이나 밤이나 눈이 부실 만큼 형광등을 켜놓고 지낸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 최은주씨는 담배 연기, 자동차 매연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물론, 타는 냄새가 싫어 구이나 튀김 요리도 할 수 없게 됐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도시 생활을 포기했다. 알뜰한 살림꾼이었던 신영순씨는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아예 정신을 놓아버렸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들은 “사고를 되새기는 것만도 고통”이라며 카메라 앞에 서기를 거부했다.
그 참담한 후유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10일 방송하는 2부 ‘이상한 징후, 그 비밀은’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 2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 신경저신과 유인균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 원인은 밝힌다.
이들의 뇌를 단층촬영한 결과, 감정이나 자극을 조절하는 부위의 뇌세포 등이 크게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불리는 사고 후유증이 의지로 극복될 수 있는 마음의 병이 아님이 밝혀진 것이다.
3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17일)에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삶을 복원하는데 어떤 사회적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홍상운 PD는 “재난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방치할 경우 그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다”면서 “팔 다리가 부러지는 등 외상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 정신적 장애를 치유하는데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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