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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고독한 황혼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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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고독한 황혼의 나라

입력
200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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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는 혼자 살던 노인이 죽은 지 며칠 후 집에서 발견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노환으로 발작을 일으키거나 넘어지는 등 작은 사고를 당해도 도움받을 이가 없이 사망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자식이나 가족과 아무 유대도 없이 혼자 살아가던 노인들이다.

독일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 중 자식이나 가족과 함께 사는 이들은 거의 없다. 남편이나 부인이 살아 있는 경우에는 둘이서, 혼자가 된 이들은 양로원에 가거나 따로 집을 얻어 살아간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여생을 지낼 정도는 되는 연금 덕분에 자식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유럽, 특히 독일 사회에 뿌리 박힌 개인주의가 가족 간의 유대보다 더 크게 이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유럽의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다른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여기에는 자신말고는 누구도, 심지어 가족과 자식조차 자기 영혼의 구제라는 실존적 문제에 있어선 타인일 수밖에 없다는 종교적 자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분석했듯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독일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던 칼비니즘이 이러한 개인주의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칼비니즘에 의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신에 의해 선택되거나 아니면 저주받은 운명으로 결정지어져 있다.

신이 결정한 개인의 운명은 어떤 노력을 통해서도 바꾸지 못한다. 나아가 누구도 어떤 운명을 갖고 태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만 자신이 선택받았을 것이라는 신앙적 확신을 가지고 현세에서 신의 과업을 이행하기 위해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갈 뿐이다.

모든 이들이 주어진 운명에 맞서 홀로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종교 윤리 하에서는 가족도 다만 서로 다른 운명을 지닌 개인 사이의 현세적 공동체에 다름 아니다. 어떤 가족 구성원도, 성직자나 교회, 심지어 신조차도 운명과 대결해 나가는 개인의 고독한 삶의 여정엔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혹은 바퀴 달린 지지대에 몸을 기댄 채 비틀거리며 혼자 장을 보거나, 강아지 한 마리를 유일한 벗 삼아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베를린의 노인들은 그렇게 저 고독한 삶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저 노인들의 외롭고도 힘겨운 삶은, 독일인이 ‘휴식처’라 부르는 무덤에서야 비로소 평온을 맞이할 것이다.

김남시 독일 훔볼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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